삼성화재 신치용 단장은 퇴임이 정해지자 스스로 선수단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고립을 택했다. 결벽에 가까운 절제는 신 단장이 정상에서 스스로를 지킨 방패였다. 스포츠동아DB
신치용 단장(62)은 삼성화재와 인연을 시작한지 23년 만에 처음으로 ‘일탈’을 했다. 삼성화재는 20일 OK저축은행과 경기를 했는데 생중계를 안 본 것이다. 그 시간 신 단장은 지인과 저녁식사를 했다. 집에 들어와서 재방송으로 경기를 봤다. “삼성화재 경기를 TV로 본 적이 없었으니 어색했다. 경기를 보니, 얘기해주고 싶은 점들이 보였는데 안하는 게 맞는 듯싶다.”
신 단장은 삼성화재 단장직에서 전격 퇴진했다.(스포츠동아 12월18일자 단독보도) 올해 말까지 단장직이 유지되지만 이미 사무실 짐을 정리하고 있다. 단장직을 내려놓은 뒤, 신 단장은 결심 한 가지를 했다. ‘잠시 배구를 잊자’는 것이었다. 그런 마음에 일부러 생중계 시간에 약속도 잡고, 짐 정리로 용인 STC(삼성트레이닝센터)에 머무를 때도 선수단을 피해 다닌다. 신진식 감독이 “식사라도 하시자”해도 “내가 짐을 다 뺀 뒤 하자”라고 미뤄뒀다. 아직 선수들과 작별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단장 신분으로 신 감독에게 남긴 마지막 당부는 이랬다. “백업이 없으니 선수관리 잘해라. 아무도 믿지 말고 기본과 원칙만 믿어라.”
퇴임이 확정된 후 신 단장은 웃음이 늘었다. 그러나 솜 속의 바늘은 여전했다. “요새 아이들은 팀을 위해 다 버리는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시대가 변하니 할 수 없지만….(웃음)”
우승을 수없이 한 명장이었음에도 신 단장은 배구감독을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배구지도법은 성의만 있다면, 큰 차이 없다. 배구에 관해서도 감독이 선수보다 얼마나 더 알겠나?” 이런 냉철한 현실인식 위에서 신 단장은 감독의 역할을 규정했다. “사람은 스스로 하면 (자기랑 타협하니까) 90%밖에 안 움직인다. 일등을 하려면 120%까지 해야 한다. 그래서 절제, 규율, 헌신의 가치를 전달할 감독, 코치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팀 문화를 만드는 것이 감독의 본질적 책무다. ‘신치용 방식’은 이 시대에도 유효할까. 신 단장은 “요즘 아이들의 가치관을 바꿔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설득하고 보듬고 이해시키면 따라 오는구나’ 이런 것이 보일 때도 있다”고 말했다.
과거 월드리그와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한 신치용 전 감독. 사진제공|대한배구협회
삼성화재 단장직에서 내려왔어도 신 단장의 배구인생이 마침표는 아닐 것이다. 지도자 신치용은 남자배구대표팀을 올림픽(2000년 시드니올림픽)으로 이끈 마지막 감독이었다. 대표팀 감독, 코치 경력도 가장 길다. 대표팀은 2018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과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이끌 전임감독을 곧 찾을 예정이다. 신 단장의 현장복귀 가능성이 배구계에서 떠오르고 있다. 이에 관해 신 단장은 “대표팀 감독 하려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 웃음으로 대신했다. “아시안게임은 모르겠고, 도쿄올림픽은 기회가 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꼭 국가대표팀이 아니더라도 신 단장은 한국배구가 원하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을 눈치였다. 신 단장은 “시간이 지나보면 알지 않겠나”라고 웃으며 답했다.
산(山)은 올라갈 때보다 하산할 때,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이미 정상을 찍은 배구인 신치용의 끝내기는 어떻게 장식될까.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