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형권 경제부 차장
A의 자금은 부모에게서 주로 나온다. “엄마, 학교 끝나고 햄버거 사먹고 바로 학원으로 갈게요. 1만 원만 보내주세요.” 일하는 엄마는 이런 용돈을 A의 계좌로 보내준다. A는 3000원짜리 PC방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7000원은 모아둔다. 부풀린 저녁 밥값 요구가 점점 잦아진다. 그래도 돈이 떨어지면 현금 많은 친구에게서 빌린다. A의 현재 빚은 30만 원 정도. 그런 A와 PC방 친구들도 미래를 걱정한다. “어지간한 대학이라도 가려면 공부해야 하는데, 이렇게 계속 지내면 인생을 망치겠지.” A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다. PC방 어디를 가도 비슷한 고교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고교생도 (한국처럼) 공부해야죠. 다만 미국엔 공부 외의 다른 기회도 많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어린 나이나 학생 신분이 장애물이 된 적이 별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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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돈 쓰는 한국 A와 과외 사이트를 운영해 돈을 번 미국 팀 황의 큰 차이를 개인기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 학생이 ‘적당하고 적법한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미국에 훨씬 더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유치원생 초등학생도 레몬주스를 만들어 팔고, 중고교생은 베이비시터나 과외, 다양한 자원봉사활동으로 경험도 용돈도 얻는다. 폭설이 내리면 눈 치워 주고 수고비 받는 건장한 남학생들도 많이 보인다. 내 노력과 역량으로 직접 돈을 벌면서 세상을 배우고, 경제적 자립심도 키운다. 대학 진학의 좋은 ‘스펙’이 되기도 하니 학부모도 학교도 사회도 격려하고 지원한다.
최근 비트코인 같은 가상(암호)화폐 열풍이 한국 사회를 덮치자 곧바로 ‘일부 고교생도 비트코인 투기판에 뛰어들었다’는 고발 기사가 잇따랐다. 정부는 즉시 ‘고교생 이하 미성년자에 대한 계좌 개설 및 거래 금지’란 손쉬운 맞춤형 보호책을 내놓았다.
학부모도 학교도 정부도 토쟁이들의 앞날을 걱정하고, ‘비트코인 투기 고교생’의 출현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불법 도박과 투기 광풍으로부터 그들을 격리하려 애쓴다. 그런데 그 처방 하나가 만병통치약이 안 된다는 사실은 동네 PC방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PC방의 A들을 향해 ‘학생이 공부나 열심히 하라’며 혀를 차고 훈계의 돌멩이를 던지기 전에 자문해 봐야 한다. 우리 중 누가 그럴 자격이 있는가.
부형권 경제부 차장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