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르 클레지오 서울무대 소설 ‘빛나…’ 출간
장편소설 ‘빛나’를 든 르 클레지오. 2011년 명예 제주도민이 된 그는 우리말로 “책 속에 길이 있다”라고 말한 뒤 프랑스어로 “문학의 의미를 정확히 표현한 속담이어서 아주 좋아한다”라고 설명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프랑스 소설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7)가 서울 곳곳을 조명하며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을 통찰한 장편소설 ‘빛나: 서울 하늘 아래’(서울셀렉션)다. ‘빛나’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출간했다. 제주 우도가 나오는 소설 ‘폭풍우’에 이어 르 클레지오가 한국을 배경으로 쓴 두 번째 작품이다. ‘빛나’ 영어판은 다음 주, 프랑스어판은 내년 3월에 각각 나온다.
우리말을 능숙하게 읽고 쓰는 그는 14일 서울 종로구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한국어를 나날이 배워요”라며 우리말로 또박또박 말했다. 2001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후 문화적 풍요로움에 매료돼 수차례 한국을 찾은 그는 대중교통으로 서울 곳곳을 누볐다.
빛나의 이야기를 통해 그는 남북 분단, 한국 현대사와 전통, 음식을 풀어냈다. 신촌, 이화여대 앞, 서울역, 우이동, 안국동, 영등포, 북한산 등 서울 구석구석도 세밀하게 묘사했다. 남산도서관 벽에 붙어 있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 구절이 등장할 정도로 발품을 판 흔적이 선명하다. 동요 ‘섬집 아기’ 악보를 실었고 ‘다리를 떨면 복이 달아난다’는 속담도 나온다.
“서울은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첨단 기술의 발달로 인간성이 상실된 측면도 있지만 여전히 작은 집과 사찰, 카페가 남아 있어요. 무엇보다 집 앞마당에 채소를 키우고 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어서 참 좋아요.”
서울을 이상적인 도시로만 그리지는 않았다. 스토커를 등장시킨 건 서울에 똬리를 튼 위험을 상징한다. ‘폭풍우’에 이어 ‘빛나’에서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세상살이에 어려움이 많은 여성이라는 존재가 소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란다. 20대인 두 딸도 그가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만들었다. ‘빛나’를 쓰는 동안 아버지의 부재와 가난으로 상처를 입었지만 긍정적으로 사는 이들을 그린 김애란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와 한강 소설가가 많이 떠올랐다고 했다.
“현대 한국 여성이 처한 문제와 심리를 탁월하게 풀어낸 작가들이에요. 한강 작가는 위대한 소설가라고 생각해요.”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