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의 매력에 흠뻑 빠진 치과의사 도승진 씨(54). 사진 강동영 전문기자 kdy184@donga.com
요즘 복싱짐 아침반의 주축은 40, 50대다. 홍수환스타복싱체육관 제공
치과의사 도승진 씨가 국제복싱클럽에서 섀도복싱을 하고 있다. 강동영 기자
“치과의사는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다. 환자들의 통증과 불편함이 주관적인 느낌일 때가 많고, 별것 아닌 걸로 여긴 증상이 막상 들여다보면 심각한 상황인 경우도 흔해 의사와 환자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있다. 하루 종일 같은 자세로 진료하다 보면 몸도 굳는다. 복싱은 스트레스 해소와 힐링에 최적의 운동이다. 어쩌다 복싱 연습을 빼먹으면 아내가 ‘당신 눈빛이 너무 날카롭다’며 단박에 알아본다.”
충분한 준비운동은 필수. 홍수환스타복싱체육관 제공
“복싱은 인간의 공격 욕구, 내가 세다는 걸 보여주려는 남자의 본능을 스포츠로 발현하는 통로다. 개인적으로는 열등감을 긍정적으로 해소하는 계기도 됐다. 나는 대학입시 4수를 했고, 낙제와 학사경고 끝에 학과에서 쫓겨났고, 직장을 몇번 옮기면서 실업자 생활도 했다. 실패를 많이 맛본 사람은 복싱과 친해지기 쉽다. 복싱에선 맞아도 버텨내고 넘어져도 일어서는 게 공격만큼이나 중요하니까.”
요즘은 건강관리에 관심이 크고 경제력을 갖춘 중장년 복서를 장기 회원으로 유지하는 게 복싱 체육관의 생존과 직결된다. 더욱이 이들 세대는 한국 복싱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로맨티스트들이다. 상당수 체육관들이 ‘손 많이 가고 돈 안 되는’ 선수 지망생을 받지 않는 대신 중장년 회원들의 로망을 자극하려 애쓰는 이유다.
이충섭 홍수환스타복싱체육관장은 “아침 직장인반은 40, 50대가 주축이다. 작고 정교한 동작으로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병행할 수 있어 중장년 복서 지망생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미트를 받아주는 유제두 관장(오른쪽). 이형삼 기자
앉은 자세로 오래 일하는 굴삭기 기사 정진우 씨(41)는 복싱으로 하체를 단련한다. 강동영 기자
신체가 부실하면 정신도 흔들리게 마련. 몸의 변화는 내면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석정 총장은 “복싱 덕분에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건 뒷골목에서 시비가 붙었을 때나 활용되는 게 아니다. 쉽게 흥분하지 않고, 참을성이 있고, 스태미너가 든든하기 때문에 업무와 비즈니스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복싱 수련 3년째인 배진형 한국성서대 교수(48·여)는 “하루를 시작하는 퀄리티(質)가 다르다. 이젠 일상에 끌려다니면서 버둥거리지 않는다. 요즘 어디에서 체육관에서처럼 마음껏 소리 지르고 뛰어보겠나”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많은 사내들이 궁금해하는 의문 하나. 격투기, 호신술로서의 복싱은 과연 어떤 위력을 지녔을까. 러시아 복서가 조직폭력배 서너 명을 볼링핀 쓰러뜨리듯 일격에 잠재우는 유튜브 동영상은 현실에서도 놀라울 게 없는 장면일까. 두 사람의 답변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열혈 권투인들의 의견임을 헤아려서 듣기 바란다.
“지금껏 누구와 ‘맞짱’ 떠본 적 있나?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전은 경험이 좌우한다. 복싱인은 매일 주먹을 휘두르고 피하면서 실전 연습을 한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들의 눈빛과 걸음걸이는 전사(戰士)를 닮았다. 어딜 가도 시비 거는 사람이 없고, 건다 해도 주눅 들지 않는다.”(도승진 원장)
■“복싱은 쉽고, 안전하고, 경제적”
복싱은 운동량이 많고 과격해 평소 몸 관리에 소홀했던 중장년이 도전하기엔 버거워 보일 수 있다. 탄탄한 기초체력 없이는 강도 높은 연습을 소화하기 어렵고 부상 위험도 크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복싱인들은 “쉽고 안전하게 기초체력을 다질 수 있는 운동으로 복싱만한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체육관에서 1시간¤1시간 반 운동할 경우 체조, 스트레칭, 줄넘기, 서킷 트레이닝, 인터벌 트레이닝 등 준비운동만 30분쯤 한다. 몸을 충분히 풀어 부상 요인을 줄일 뿐더러 이것만으로도 효율적인 체력훈련이 된다.
복싱 체육관에선 스파링이 없을 때도 쉼 없이 공(gong)이 울린다. 실전에서처럼 ‘3분 운동 후 1분 휴식’ 리듬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강약을 조절하면서 운동하기 때문에 심장에 무리가 덜 간다고 한다. 안면부 충격을 덜어주는 헤드기어, 손과 손목 부상을 막는 압박붕대와 글러브, 치아를 보호하는 마우스가드 등 ‘안전 도우미’들의 역할도 크다. 초보자는 스파링도 약속대련 식으로 할 때가 많다.
임휘재 관장은 “중장년 입문자들의 각기 다른 체력 조건에 맞도록 프로그램을 세분화해 연습시킨다”며 “1주일에 2, 3일씩 3개월만 버티면 새 세상이 열린다”고 말한다. 이충섭 관장은 “선수들 줄넘기 하는 것 보고 질려서 복싱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던데, 줄넘기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다른 운동법도 많다”고 했다. 일반인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복싱 매뉴얼을 그만큼 유연하게 적용한다는 얘기다. 요즘은 날씬한 몸매를 위해 글러브를 끼는 여성 회원들도 체육관의 주요 고객이라 함께 운동하는 중장년 남성 복서들의 훈련 열기를 높인다.
값비싼 장비 없이 맨손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복싱의 장점. 대부분의 장비는 체육관에 있는 것을 함께 쓴다. 개인용으로 갖출 만한 것은 압박붕대와 백장갑(샌드백 치는 글러브) 정도다. 시합 때 신는 복싱 슈즈는 쿠션이 없어 장시간 운동하기 불편하다.
일반 조깅화를 신고 연습하면 된다. 복싱 체육관 회비는 월 8만∼15만원선. 3개월 이상 장기등록하면 큰 폭으로 할인해주는 곳이 많다.
이형삼 전문기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