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전문기자의 코리안 지오그래픽]‘서울역서 2시간’ 성큼 다가온 강릉
강릉∼삼척의 바다를 차창을 통해 영화처럼 감상하는 바다열차. 강릉(강원)에서 summer@donga.com
강릉은 그렇게 내게 각인됐다. 첫 여행은 그 5년 후. 군복무 후 복학에 앞서 떠난 설악산 여행길에서다. 고속버스는 대관령 구절양장 도로를 기다시피 했다. 그래서 주변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삼청교육대의 교육생들이 보였다. 군 작업복 차림으로 총을 든 군인 감시 하에 산기슭에서 간벌작업 중이었다.
그 강릉은 여행취재에서도 한 획을 긋는 곳이다. 여행 전문기자로 일해온 22년간 가장 많이 찾은 곳으로. 그 배경은 정동진이다. 드라마 ‘모래시계’(1995년)로 뜬 지도 벌써 22년. 그럼에도 그 인기는 여전하다. 새해 첫날도 똑같다. 해변이 발 디딜 틈 없이 해맞이 인파로 메워진다. 평소라고 다를까. 국내 유일의 이 해변 역은 갈 곳 마땅찮은 이에게 가장 만만한 곳이다. 청량리역에서 중앙선(무궁화호) 열차에 오르기만 하면 되니까. 여행기사는 독자의 시선을 쫓는다. 그게 내가 강릉을 무수히 찾은 이유다.
시운전 중에 서울역에 들어선 경강선 KTX 산천.
독자 중엔 기자처럼 과거의 강릉에 매몰된 분도 많을 듯싶다. 그게 이 글을 쓰는 이유다. 고속철이 강릉을 되찾을 분명한 이유를 선사해서다. 두 시간은 조간신문 하나도 끝까지 다 읽지 못할 정도로 짧은 시간. 그사이에 우린 강릉에 닿는다. 그런데 강릉은 더 이상 기억속의 그곳이 아니다. 구수한 사투리는 여전해도 먹고 마시고 쉴 곳은 서울 뺨친다. 어쩌면 은퇴 후 새 삶의 도전장을 내기에도 안성맞춤일 수 있다. 그런 운명의 장소로 점쳐질 정도로 마음이 끌린다. 경강선 고속철 개통은 이달 22일. 가능하면 올림픽 개막 전에 다녀오자. 전광석화급 열차 운행이 강릉을 ‘동해 수도’로 일으켰다.
장가들기로 일어선 오죽헌
오죽헌 옆 강릉오죽한옥마을. summer@donga.com
강릉 3대명소도 타지인의 작품
지금의 강릉도 다르지 않다. 강릉의 어트랙션 3개가 같은 맥락이다. 노추산 모정탑(母情塔) 길을 보자. 주운 돌을 하나하나 올려 쌓은 돌탑이 3000개나 줄이어진 특별한 숲길이다. 주인공은 2011년 타계한 차옥순 씨. 26년간 쉼 없이 사흘에 한 개꼴로 쌓았다는 데 그 사연은 이렇다. 슬하 4남매 중 두 아들이 요절하고 남편마저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던 차 씨는 ‘탑을 쌓으면 평화를 얻을 것’이란 꿈을 꾸었다. 노추산을 찾은 차 씨는 움막을 짓고 홀로 돌탑 쌓기를 시작했다. 그게 1986년이고 그 일은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그녀 역시 서울서 강릉으로 시집온 타지사람이다.
강릉을 ‘커피공화국’으로 이끈 이 중 한 사람인 박이추 씨(69·바리스타)는 일본서 태어나 귀화한 재일교포다. 목축업을 하러 귀국했지만 이내 접고 커피숍(서울 혜화동·1988년)을 차렸다. 하지만 제 맛을 내려면 배울 게 많았다. 그래서 도쿄로 가 바리스타수업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서울에서 커피전문점을 근 10년이나 운영했다. 강릉 이주는 1999년. ‘보헤미안 로스터스’(커피콩 가공공장)를 세우고 커피사업을 키웠다. 경포호반과 영진해변, 사천해변의 가공공장에 커피하우스도 운영 중이다.
강릉에서 바다를 즐기는 두 가지 방법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을 걷는 도중 만나는 풍경. 융기작용으로 바위가 들려올려진 모습이 선명하다. 강릉(강원)에서 summer@donga.com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정동진(썬크루즈리조트 주차장)∼심곡항(2.86km 구간) 해안단구를 물가에 낮게 가설한 경관보도. 해안단구란 해안의 바위가 계단처럼 발달한 지형으로 지각의 융기나 해수면 저하로 물에 잠겼던 바위가 드러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부산 태종대. 바다부채길 구간은 태종대의 강릉버전이라 할 수 있다. 그간엔 간첩 침투로 악용가능성으로 출입이 금지됐다. 험준한 바위해안을 따르는 보도 주변의 풍경은 열 걸음 한 번씩 기념사진을 촬영하게 만들 만큼 수려하다. 특히 바위에 깨지는 파도 모습과 그 소리는 태종대를 능가한다. 단, 주말은 피한다. 찾는 이가 너무 많다.
강릉(강원)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 여행정보
KTX 경강선: 12월 22일 개통. 고속철(신설) 구간은 서원주∼강릉(120.7km), 65%가 터널. 대관령터널(21.7km)은 국내 최장. 신설 역은 6개(만종 횡성 둔내 평창 진부 강릉) ◇요금 ▽서울역 2만7600원 ▽청량리역 2만6000원 ▽인천공항역 4만700원. 상봉역(서울지하철 7호선·경춘선 환승)에서도 타고 내린다. ◇운행 ▽주중 18회 ▽주말 26회 ◇출발시각(매시) ▽서울역 1분 ▽청량리역 22분 ▽강릉역 30분. ◇소요시간 ▽서울역 114분 ▽청량리역 86분
강릉오죽한옥마을: 오죽헌 옆에 조성한 우아한 한옥마을. 단층, 2층 한옥이 큰 마을을 이뤘다. 강릉시 죽헌길 114, 033-655-1117 www.ojuk.or.kr
차현희 순두부·청국장의 전복 순두부전골과 생선구이.
맛집: ◇차현희 순두부·청국장(본점): 강릉 초당순두부마을 안. 전복순두부전골(2인분 이상·1인분 1만5000원)에 황태구이(1만 원) 명태찜(1만 원), 생선구이(3000원)를 추가하면 멋진 한상차림이 된다. 강릉시 초당순두부길 98, 033-653-0811 ◇산나물천국(점봉산산채): 서른 가지 반찬의 상차림 한가운데 열네 종 산나물모둠 접시가 놓인다. 그걸 명이나물로 쌈해 먹는 나물쌈이 이 식당의 특징. 차림별로 1만∼2만 원. 강릉시 난설헌로 168(허균생가 옆), 033-652-7033. 첫째·셋째 일요일 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