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높은 산/얀 마텔 지음·공경희 옮김/416쪽·1만4000원·작가정신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아트 서커스 ‘라 베리타’.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이 서커스를 떠올리게 한다. 얀 마텔은 한국 독자들에게 “외진 마을에서, 내면의 감정 속에서 기묘한 것을 탐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DB
작품은 시대를 달리해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세 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904년 포르투갈에 사는 토마스는 일주일 사이 아들과 아내를 병으로 잃고, 아버지마저 숨지자 세상에 대한 저항감에 1년째 뒤로 걷는 중이다. 국립 고미술박물관에서 학예사 보조로 일하는 그는 17세기 율리시스 신부가 노예무역을 하던 앙골라에서 쓴 일기를 발견하고 강렬하게 이끌린다. 참혹한 상황에 처한 노예들에게 세례를 해야 하는 신부의 고통과 복잡한 심경은 일기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부가 만든 십자고상이 포르투갈 북쪽 높은 산에 있는 성당들 중 하나에 있음을 파악한 그는 십자고상을 찾아 떠난다.
1981년 캐나다 상원의원 피터는 40여 년을 함께했던 아내를 떠나보냈다. 미국에서 침팬지 보호소를 방문한 그는 충만하고 진솔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침팬지 ‘오도’를 만난다. 피터는 거액을 주고 ‘오도’를 구입한 뒤 할아버지의 고향인 포르투갈로 건너가 ‘오도’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저자 특유의 글쓰기는 여전하다. 에우제비우가 부검한 남성의 몸에서는 사과, 달걀, 진흙덩어리, 부젓가락 한 쌍 등이 쏟아져 나온다. 그가 살아오며 접했던 물건들이다. 마지막으로 흉부와 복부를 열자 새끼 곰 한 마리를 안은 침팬지가 나타난다. 피터는 ‘오도’와 바위를 오르다 멸종된 이베리아 코뿔소를 발견한다. 세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 소재는 서로 맞물리며 연결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포르투갈의 북쪽에는 높은 산이 없다는 사실도 내비친다.
한 편의 마술쇼를 보는 듯, 흥미롭고 때때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이야기를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인간이 한없이 약해졌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존재한다고 믿는 그 무언가일 수도 있고, 눈빛만으로도 교감하는 동물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낯선 곳에 던져져 먹거리, 잠잘 곳, 온몸을 가렵게 만드는 이 잡기 등 원초적인 욕망을 해결하려 낑낑거릴 때만큼은 상실감을 잊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살이란 건 이성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아니 이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환상 같은 여러 일들은 이를 상징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