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거시기 장터’ 홈페이지 캡처
‘무를 작고 네모나게 썰어서 소금에 절인 후 고춧가루 따위의 양념과 함께 버무려 만든 김치(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는 어떻게 ‘깍두기’라는 이름을 얻게 됐을까.
80년 전 오늘(1937년 11월 10일)자 동아일보는 김장철을 맞아 ‘지상 김장 강습’을 진행하면서 깍두기의 유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3년 뒤 ‘조선 요리학’이라는 책을 펴내 홍선표 선생은 이 글에 “조선 정조(1752~1800)의 사위인 영명위(永明尉) 홍현주의 부인이 임금님에게 여러가지 음식을 새로이 만들어 드릴 때 처음으로 무를 썰어 깍두기를 만들어 드렸더니 대단히 칭찬하시고 잡수신 일로 여염가까지 전파하였다”며 “그때 이름을 각독기(刻毒氣)라 하였고 … 공주(충남 공주시)에 낙향해 깍두기를 만들어 먹은 까닭으로 공주에서부터 민간으로 시작된 관계로 오늘날까지 공주 깍두기가 유명한 것”이라고 썼다.
재미있는 건 깍두기를 처음 담근 사람이 “정조의 사위의 부인”이었다고 썼다는 것. 사위의 부인은 자기 딸이다. 홍현주가 다른 아내를 두었다는 기록도 없다. 따라서 이 글에 등장하는 ‘정조의 사위의 부인’은 홍현주와 혼인한 숙선옹주(1793~1836)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면 숙선옹주가 정말 깍두기를 처음 만들었을까. 이에 대해 음식문화평론가 윤덕노 씨는 2011년 11월 25일자 동아일보에 쓴 ‘[윤덕노의 음식이야기]<106> 깍두기’에서 “(홍 선생이) 별다른 근거를 대지 않고 숙선옹주가 깍두기를 처음 만들었다고 써놓았다”며 “조선에서는 시집간 공주나 사대부 부인들이 궁중에 모여 음식을 만들어 왕실 어른들을 대접했다. 숙선옹주가 이때 음식솜씨를 자랑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먼저 숙선옹주가 홍선주와 가례를 치른 건 정조가 세상을 뜬 지 4년이 지난 1804년이다. 따라서 ‘시집 간 공주’가 다른 왕실 어른들을 대접할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정조 임금에게 깍두기를 대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혼 때였다면 어땠을까. 시집가기 전 임금의 딸이 직접 요리를 할 수 있었는지 아닌지는 차치하더라도 정조가 세상을 떠날 때 숙선옹주는 한국 나이로 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말이 맞으면 숙선옹주가 여덟 살 전에 깍두기를 생각해 낸 ‘요리 신동’이었어야 하지만 역시나 관계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만약 숙선옹주가 정말 깍두기를 처음 만들었다 해도 이 무 김치 요리를 처음 먹은 임금은 아버지인 정조가 아니라 오빠인 순조(1790~1834)였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물론 윤 평론가가 쓴 것처럼 깍두기가 ‘서민들 허드레 김치’에서 발전했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여쭤본다. 여러분은 국밥을 드실 때 깍두기 국물을 넣으십니까. 아니 넣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