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출범 30돌]국민 노후자금 ‘금융 외딴섬’ 우려
5000만 국민의 노후자금을 책임지는 국민연금이 위태롭다. 지난달로 공단 설립 30주년을 맞은 국민연금은 600조 원 규모의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올 초 공단이 전북 전주로 이전하면서 운용인력이 대거 이탈했고 아직도 그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덩치만 컸지 이처럼 우수 인력들이 외면하고 세계 시장과 유리(遊離)되면서 글로벌 경제의 ‘갈라파고스’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 운용인력 대거 이탈… 빈자리도 못 채워
북한 리스크나 미국, 중국과의 통상 이슈 등으로 경제 환경이 급변하고 있지만 중요한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수장(首長)조차 없다. 문형표 전 이사장이 올해 2월 사퇴한 이후 아직까지 이사장을 뽑지 못하고 있다. 7월 강면욱 전 본부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한 후 기금운용본부장 자리도 석 달째 공석이다.
인재 유출은 공단이 전주혁신도시로 본사를 이전하면서 접근성 떨어진 게 직격탄이 됐다. 서울 중심의 인적 네트워크에서 배제되고 고급 투자 정보에 뒤처지는 것을 우려해 우수 인력들이 지원을 꺼리는 것이다. 해외 사모펀드(PEF)나 자산운용사들과의 교류도 한층 어려워졌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전주 이전 후 기금운용본부를 방문하는 외국인 투자자의 숫자가 예년의 3분의 1 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공백은 투자 성과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가장 문제가 심각한 곳은 해외투자와 대체투자 분야다. 코스피 상승세에 힘입어 국내 주식에서는 올 들어 7월 말까지 22%의 수익을 거뒀지만 해외주식(6.78%), 해외채권(1.42%), 대체투자(―1.02%) 수익은 기대에 못 미쳤다. 세계 3위 규모인 국민연금이 ‘연못 속 고래’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현재 20%대에 머물고 있는 해외투자 비중을 2022년 말까지 40%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지만 운용할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인력은 80여 명이다. 기금 규모가 10분의 1로 해외투자를 전담하는 한국투자공사(KIC)의 전체 인력 250여 명보다도 적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해외 인프라에 몇 조 원을 쏟겠다는 계획을 세워도 실제로 투자를 집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꼬집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업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봉이 낮은 데다 계약직이다 보니 해외투자를 할 만한 전문 인력을 끌어오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기금운용본부장의 임기도 2년에 그친다. 1년씩 연임이 가능하지만 3년 임기를 채운 경우는 역대 7명의 기금운용본부장 중 2명뿐이었다. 선임 과정부터 정부의 입김이 반영되다 보니 외압에서 자유롭게 중장기적인 투자 전략을 세우는 게 힘들다. 올봄 기금운용본부를 떠난 A 씨는 “공무원 조직의 경직된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우수한 인재들이 상명하복의 시스템을 못 견디고 조직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도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전직 운용역 B 씨는 “운용역들은 기업의 미래 가치를 분석해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단기 실적에 연연해 기계적으로 자산을 배분한다”며 “기존 관행대로 투자하지 않거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쓰면 ‘예전 투자가 다 잘못됐다는 것이냐’는 질책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남 연구원은 “왜 손실을 냈는지 자꾸 따지다 보니 주요 투자 결정 때마다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성민 min@donga.com·신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