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 사회부 차장
개혁위는 법무부에 ‘검찰 과거사 조사위원회’(과거사위) 설치를 권고했다. 검찰이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려면 과거 인권 침해와 검찰권 남용 사례 진상을 규명하고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법무부는 이처럼 중요한 개혁위 권고를 지난달 29일 공개했다. 열흘짜리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이다. 개혁위가 과거사위 설치 문제를 마지막으로 논의한 날은 같은 달 25일. 회의 결과를 나흘이나 뭉개고 있다가 뉴스 소비가 줄어드는 연휴 직전에 슬쩍 꺼내놓은 것이다.
과거사위 설치는 그렇게 은근슬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검찰의 과거 잘못을 확인하려면 사건 기록을 열어봐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과거사위에 수사 기록과 재판 기록 열람권을 부여하는 법부터 만들어야 한다. 과거사위 설치가 꼭 필요하다면 법무부에 권고할 일이 아니라 국회에 입법 청원을 해야 한다.
법무부 내부에서는 개혁위 권고를 어떻게든 따를 방법을 찾다 보니 ‘감찰 담당 검사를 과거사위에 참여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감찰 담당 검사를 통해 과거사위가 사건 기록을 간접적으로 열람하게 하자는 것이다. 개혁을 하자며 멀쩡한 대문 놔두고 담을 넘는 꼴이다.
개혁위가 과거사위 조사 대상으로 언급한 검찰권의 부당한 남용이나 인권침해 사건은 본래 조사가 아니라 감찰 대상이다. 감찰을 해서 문제가 드러나면 징계를 하거나 수사를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개혁위는 그런 사건들을 법적 권한이 없는 과거사위에 맡겨 조사하게 하고 그 결과를 공표하려고 한다. 이는 망신 주기식 ‘인민재판’이 될 수 있다.
보도자료에서 개혁위는 과거사위 설치가 필요한 이유로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최근 별도 위원회를 설치해 과거사 진상 조사 활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에 비해 법무부와 검찰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자체 조사를 하거나 반성, 재발 방지 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검찰은 수사와 공판이 본업이다. 또 매번 수사 결과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받는다. 검찰이 불기소를 한 사건도 항고와 재항고, 재정신청 등 불복 절차가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 이미 재판이 끝난 사건도 명백한 불법 수사임이 드러나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 부족할 때는 국회가 특별검사법을 만들어 정식으로 재수사를 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과거사위가 꼭 필요한가. 여태껏 검찰 과거사위가 없었던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