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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새 밀레니엄 시리즈의 탄생… 짜릿한 긴장감 여전

입력 | 2017-09-30 03:00:00

◇거미줄에 걸린 소녀: 밀레니엄 4권/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임호경 옮김/576쪽·1만6500원·문학동네




‘거미줄에 걸린 소녀’는 기술을 이용해 타인을 감시하고 이익을 챙기려는 인간의 욕망을 비판적이면서도 매혹적으로 그렸다.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한 누구도 촘촘한 감시의 그물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동아일보DB

온몸에 피어싱과 문신을 한 깡마른 여성 천재 해커 리스베트, 예리한 관찰력과 집요함으로 정보기관보다 한발 앞서 사건을 파고들어가는 베테랑 남성 기자 미카엘. 그렇다. 밀레니엄 시리즈가 돌아왔다. 새로운 작가와 함께.

저자는 시리즈 1∼3권을 완성한 후 심장마비로 숨진 원작자 스티그 라르손(1954∼2004)의 뒤를 이어 공식 작가로 선정됐다. 라르손과 마찬가지로 스웨덴 기자 출신으로 ‘앨런 튜링 최후의 방정식’ 등을 낸 베스트셀러 작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막대한 부담감을 이겨내고 시리즈의 명성에 걸맞은 수작을 탄생시켰다. 3권으로 끝났을지 모를 시리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

이야기는 스웨덴의 천재 컴퓨터 공학자 프란스 발데르가 살해되면서 시작된다. 미국의 유명 정보기술(IT)기업에서 일하다 갑자기 귀국한 그가 만들어낸 건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 프로그램. 신변에 위협을 느낀 프란스는 미카엘에게 모든 걸 털어놓으려 하지만 미카엘이 그의 집에 도착하기 직전 살해된다. 살해 현장을 목격한 이는 프란스의 여덟 살 아들 아우구스트로, 자폐 증세가 있지만 특정 순간을 사진처럼 완벽하게 기억해 그려내는 능력을 지녔다.

미카엘이 리스베트와 협력해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씩 파헤쳐 나가는 가운데 스웨덴 검찰과 경찰 및 국가안보기관 세포, 미국 국가안보국(NSA)까지 개입하며 각종 변수들이 터져 나온다.

퍼즐 조각이 하나둘 맞춰지며 희미하던 그림이 서서히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은 짜릿함은 책장을 맹렬하게 넘기게 만든다. 정교한 이야기가 작품을 단단하게 떠받치는 가운데 기존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도 놓치지 않는다. e메일, 인터넷 검색 기록은 물론 휴대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까지 디지털 기기를 통해 벌어지는 행위 하나하나가 국가와 기업, 범죄조직에 의해 감시되고 도청되는 정보화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해커는 모든 걸 훔칠 수 있고 변호사가 있으면 모든 도둑질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일갈은 무력한 법 제도를 꼬집는다. 자본에 위협받는 언론의 위태로운 현실도 가감 없이 비춘다.

여성과 어린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터프하게 응징하는 리스베트의 캐릭터는 여전하다. 여성이 예의상 짓는 미소를 남성에 대한 유혹으로 여기는 현실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나의 독립된 사건을 다루기에 처음 책을 접하더라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다. 기존 독자라면 라르손이라는 물리 교사를 카메오처럼 등장시킨 대목에서 스티그 라르손에 대한 오마주를 발견하는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리스베트와 가족을 둘러싼 새로운 사실도 밝혀지며 만만치 않은 또 다른 사건이 펼쳐질 것임을 예고한다. 이전 시리즈에 이어 4편도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원제는 Det Som Inte D¨odar Oss.(Millennium 4)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