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그린 단편집 ‘국화밑에서’ 출간… 등단 64주년 원로소설가 최일남
최일남 소설가는 “나이가 드니 새벽 2시까지도 잠들기 어려운 게 고역이지만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 진출한 우리 축구, 야구 선수들이 요즘 경기를 잘 못해 새벽에 TV 보는 재미가 줄었다”며 웃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여러 세상을 겪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은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이 책에는 내 경험을 많이 녹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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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현역 최고령 소설가’라고들 하는데 알려지지 않았을 뿐 더 나이 많은 소설가가 있을 거예요. 고마운 말이긴 하지만 나이로 사람을 규정짓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2015년 ‘최일남 소설어 사전’(조율)이 나왔을 정도로 우리말을 맛깔나게 구사하는 솜씨는 여전하다. ‘호도깝스럽다’(조급하고 경망스럽다), ‘헤실바실’(흐지부지되는 모양) 등 자주 접하지 못하는 단어가 살아서 펄떡인다.
“단어 하나를 찾으려고 반나절 넘게 고민한 적도 많아요. 안방, 화장실, 거실 등 집안 곳곳에 종이와 펜을 두고 문장이나 단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해요.”
잠에서 깨어 뒤척이다가도 머리를 스치는 게 있으면 불도 켜지 않은 채 적는단다. 아침에 일어나 들여다보면 해독이 불가능할 때가 적지 않지만. 엄격하고 정제된 글은 이런 노력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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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는 젊은 시절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한 단계 높아졌다.
“내 첫 작품이 ‘쑥 이야기’(1953년)라고 하지만 등단 전, 한 금융조합에서 주최한 저축 장려 글짓기 대회에서 1등을 한 적이 있어요. 본명을 사용하기 쑥스러워 ‘최인수’라고 썼는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김동리 선생이 나중에 ‘최인수가 최일남 맞지?’라며 귀신같이 아셔서 깜짝 놀랐어요.”(웃음)
그는 구상 중인 소설이 있지만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소설 쓰는 건 어렵지만 이걸 붙들고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돈으로 치는 사기보다 글로 치는 사기가 더 무서운 건데, 그건 안 했으니 그런대로 잘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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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