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급한 ‘혁신성장’
#2. 미국 경제전문지인 포브스가 매년 발표하는 ‘가장 혁신적인 성장기업’에서 올해 상위 25개 중 일본과 중국 기업은 각각 4곳, 3곳이 포함됐다. 한국 기업은 없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KPMG가 지난해 선정한 세계 100대 혁신 핀테크 기업에도 한국 기업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미국(25개), 영국(12개), 중국, 호주(이상 9개) 등과 큰 격차다.
한국의 혁신 경쟁력이 글로벌 시장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국무회의에서 혁신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에도 이런 위기감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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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제연구원이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2014년도 기술수준 평가’를 토대로 산출한 한국의 4차 산업혁명 기반산업 기술의 종합점수는 77.4점이었다. 미국(99.8점), 유럽연합(92.3점), 일본(90.9점)에는 크게 뒤처졌다. 중국 종합점수는 68.1점으로 한국과 점수 차가 10점 이내로 좁혀졌다.
한국의 거미줄 규제가 결정적 원인으로 꼽힌다. 아산나눔재단과 구글캠퍼스 서울이 7월 발표한 ‘스타트업코리아 정책 제안 발표회’ 연구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규제 장벽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츠가 선정한 세계 100대 스타트업(투자액 기준) 중 57곳은 한국에서 창업했다면 규제 탓에 사업을 시작도 하지 못했거나 조건부로만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차량공유 서비스업체 ‘우버’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저촉된다.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활용한 치료법으로 주목받는 제약회사 ‘모더나’는 국내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사업을 할 수 없다. 중국의 원격의료 업체인 ‘위닥터그룹’도 한국 의료법 때문에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회사다. 한국은 선진국 대비 개인정보 보호 관련 규제가 강해 핀테크 기업의 성장이나 유전자 정보 활용 치료법 개발 등이 모두 막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로 불리는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도 어려운 편이다.
규제 개혁과 관련한 전문가들의 조언은 단순하다. 우선 혁신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선(先)허용 후(後)규제의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기업이 혁신 제품과 서비스를 자유롭게 시험해볼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가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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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성장의 접근 방식을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으로 획일적으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기업 규모에 따른 규제 적용보다는 파트너십을 유도해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는 얘기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은 “대기업과 벤처기업 간 인수합병(M&A)이 활발한 해외에 비해 국내는 각종 규제로 M&A가 활성화돼 있지 않다”고 했다. 그는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면 바로 계열사로 포함돼 각종 규제에 발목을 잡힌다. 그러면 작은 기업이 가졌던 장점도 사라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이든 중소·벤처기업이든 기존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업을 한다면 과감히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해당 분야에 대해 법인세 인하 등의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수정 crystal@donga.com·임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