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임·정책사회부
취재 과정에서 A교대 교수는 “비정규직 제로(0)가 정말 가능한가. 서로 속이고 있는 게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교육 현장에서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근본 원인을 따져 보지 않고 정규직화를 밀어붙인다면 어디선가 또다시 비정규직은 생겨난다.
B학교는 지난해 베트남어를 쓰는 다문화가정 학생이 다수 입학하자 베트남어 강사를 채용했다. 그랬더니 올해는 인도네시아어를 쓰는 학생만 입학했다. 다문화언어 강사를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한다면 이런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 자발적인 비정규직도 있다. 자녀가 어린 여성들은 파트타임 강사 자리를 선호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에 너나없이 “정규직으로 해 달라”고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특히 교사는 ‘철밥통’에 비유될 만큼 좋은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A교대 교수는 “진지한 성찰 없이 정규직화를 추진한다면 사회적 갈등만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꺼번에 정규직화가 이뤄지면 노동시장은 경직되고, 미래세대의 진입 장벽은 더욱 높아지는 부작용이 뒤따른다. 기간제 교사는 출산·육아 휴직대체 등 본래 목적 외에 편법 및 불법 채용을 근절해 정규직 교사로 가는 길을 대폭 넓혀야 한다. 동일한 노동을 한다면 차별을 느끼지 않도록 비정규직 처우도 개선해야 한다.
대통령의 청와대 집무실에 설치한 일자리 상황판에는 정규직 현황이 표시된다. 압박이 큰 각 부처는 정교한 정책 설계 없이 숫자 올리기 경쟁을 벌이는 건 아닐까. 정규직화가 ‘절대선’이라는 확신을 버려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면 비정규직이 필요한 부분이 보인다. 그래야 2중, 3중 진입 장벽을 만들지 않게 된다. 그래야 정책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다.
우경임·정책사회부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