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 알린다” 4000만원 갈취 ‘3억원 지급’ 각서까지 요구 다른 여성 협박용 동영상 촬영 경찰, 공갈-사기 등 혐의로 구속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봐요. 돈도 아이도 남편도 다 잃었습니다.”
올 4월 서울 마포경찰서 강력4팀 사무실을 찾아온 30대 유부녀 A 씨가 경찰관에게 하소연했다. 한참을 울먹이던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연하의 애인에게서 협박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후회로 끝난 1년간의 사연을 털어놨다.
A 씨가 B 씨(27)를 만난 건 지난해 3월. A 씨는 병원 간호사, B 씨는 환자였다. B 씨는 자신을 서울 유명 사립대 의대생이라고 소개했다. 키 183cm에 모델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외모였다. 주말부부였던 A 씨는 자상하고 재미있는 B 씨의 말에 푹 빠졌다. 주로 낮에 만나 카페나 영화관에서 데이트를 즐겼다. B 씨는 육체적 관계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A 씨는 잠시나마 학창 시절의 풋풋한 연애 감정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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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가 되돌아보니 B 씨는 ‘밀당’의 고수였다. 데이트 약속 후 “학교에 가야 한다” “세미나가 있다”며 시간을 자주 미뤘다. A 씨가 아쉬워하면 대학병원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냈다. A 씨의 감정은 갈수록 깊어졌다. 그러자 B 씨는 본색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배가 고프다며 스마트폰 결제가 가능한 피자와 치킨 주문을 요청했다. 나중에는 “월세를 내야 한다” “전기세가 밀렸다”며 액수가 커졌다.
급기야 A 씨가 이별을 통보하자 B 씨는 둘의 관계를 남편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며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했다. A 씨는 대출까지 받아 6개월 동안 4000만 원을 건넸다. ‘3억 원을 준다’는 각서까지 썼다. 견디다 못한 A 씨는 결국 경찰서를 찾았다. 경찰은 5월 초 B 씨를 체포해 공갈과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 남성 ‘꽃뱀’의 사기극이었다. 그러나 보강 수사를 진행하던 경찰은 깜짝 놀랐다. B 씨의 스마트폰을 압수해 분석한 결과 여성의 나체와 성관계 장면이 담긴 사진과 동영상이 쏟아진 것이다. 등장하는 여성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심지어 동영상과 사진을 자신의 지인에게 보낸 흔적도 나왔다. B 씨의 은행 계좌에는 여성 여러 명이 수시로 돈을 보낸 기록이 가득했다.
경찰 수사 결과 B 씨는 마치 신용카드 돌려 막기처럼 A 씨 등 9명의 여성에게서 각각 돈을 뜯어내고 돌아가며 여성을 만났다. 그리고 여성들을 협박하기 위해 몰래 나체 사진과 성관계 동영상을 찍었다. B 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실은 고졸인데 여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의대생을 사칭했고 몰래 성관계 동영상을 찍었다”고 자백했다. B 씨는 직업도 없이 여성들에게서 뜯은 돈으로 생활해왔다. 경찰은 B 씨를 공갈과 공갈 미수, 사기와 성폭력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구속했다고 31일 밝혔다.
‘몰래카메라(몰카)’를 이용한 범죄가 심각한 수위에 이르자 경찰도 다각도의 대책을 세우고 있다. 우선 몰카라는 용어를 수사자료 등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몰카라는 용어가 처음 TV 예능프로그램 등을 통해 사용되면서 사실상 범죄가 아닌 놀이나 문화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최근 이철성 경찰청장은 범죄의식을 약화시키는 몰카 대신에 다른 용어를 찾으라고 직접 지시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모든 공문과 공식석상에서 몰카 대신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라는 정식 명칭을 쓰고, 약자로는 ‘불법 촬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당초 ‘도촬(도둑 촬영)’이라는 용어도 검토했지만 일본 경찰이 쓰는 일본식 표현이라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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