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극인 산업부장
기업 간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일본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인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다. 다른 일본 기업에서는 보기 힘든 화끈한 투자 때문이다. 미국 3위 통신사 스프린트(약 21조 원),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홀딩스(약 31조 원)를 인수한 데 이어 최근엔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와 손잡고 110조 원 규모의 ‘비전 펀드’를 만들었다. 이 돈으로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기업들을 쓸어 담고 있다. 일본 국민들이 ‘일본의 미래는 있다’고 안도할 정도다.
일본 언론이 손정의식 투자의 핵심 요인으로 꼽는 것은 손정의 자신이다. 오너여서 대규모 위험을 감수한 투자를 결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너여서 구축할 수 있었던 인맥도 화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 군정의 재벌 해체로 일본에서 사라지다시피 한 오너십 경영이 재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의 인연은 야후와 알리바바 투자로 이어졌다. 손정의는 30년 전 창립한 잡지 창간호 인터뷰차 게이츠를 처음 만났다. 당시 그의 추천으로 알게 된 미 컴퓨터 전문지를 인수하면서 무명의 야후 창업자 제리 양을 만나게 됐다. 양은 이후 중국 여행 중 관광 가이드로 만난 마윈을 1999년 손정의에게 소개했다.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의 잠재력을 알아챈 손정의는 즉석에서 220억 원의 투자 결정을 내렸다.
손정의는 지난해 말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을 따로 만나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다리를 놓은 인물은 미 카지노 재벌 셸던 애덜슨. 1994년 손정의가 세계 최대 컴퓨터 전시회인 컴덱스를 인수하면서 부르는 대로 값을 쳐줬는데, 당시 컴덱스 사장이 애덜슨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손정의의 세계적 인맥은 변화가 빠른 정보기술(IT) 업계의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무기”라고 평가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굵직한 제휴와 합종연횡은 이처럼 오너의 개인 네트워크를 타고 이뤄지는 게 다반사다.
한국에서는 손정의에 맞서 글로벌 인맥 네트워크에 낄 수 있는 인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이건희 명예회장의 인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중국 보아오포럼(3월), 엑소르 이사회(5월),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7월) 등 글로벌 네트워크를 매년 직접 챙겨 왔다. 지난해 말에는 트럼프 당선인과 애플, 구글, MS 등 글로벌 IT 업체 대표 간담회에도 초대받았으나 출국금지 조치로 가지 못했다.
이 부회장은 여전히 발이 묶여 있다. 지난주 1심에서 법리 논란 속에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는 사이 소프트뱅크 구글 애플 등 해외 라이벌들은 한 달에 한 개꼴로 미래를 향한 인수합병(M&A)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의 M&A는 지난해 11월 이후 올스톱 상태다. 그런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