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국회의원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4급 보좌관이 월급에서 매달 150만 원을 반납해 지역구 사무실 운영 경비로 충당했다고 한다. 다른 보좌진도 자진해서 월급 50%를 반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국회의원이 중요 경선에 출마하자 핵심 측근은 건설업자로부터 “경비가 많이 들 텐데 사사로운 경비는 이 카드로 사용하시라”는 말과 함께 법인카드를 받았다. 국회의원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 유명 부티크에서 한 번에 구입한 옷값 500만 원이 이 카드로 결제됐다. 이 매장의 옷값은 보통 벌당 100만 원이라고 알려졌다.
고위직에 오른 이 국회의원은 공관에서 만찬을 베풀었다. 지역구에서 대형 사업을 벌이려는 건설업체 대표 2명을 불러 군소 건설업자에게 공사를 주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나온 이유다. 핵심 측근이 이 군소 업자가 공사를 딸 수 있게 모 대학 관계자를 연결시켜 줬단 의심도 있었다. 3선 국회의원과 장관 두 번, 국무총리를 역임한 한명숙 씨 이야기다. 그는 정치자금으로 달러를 포함해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2년 수감되고 최근 출소했다. 금액이 커서 그런지 보좌진의 월급꺾기나 공사 따주기 압력 의혹은 별 주목도 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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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혹 역시 수수 금액에 비하면 사소해서 그랬는지 그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지 않고 그냥 넘어간 느낌이다. 그런데 그는 출소 첫 일성으로 “새 세상을 만나 감사하다”고 했다. 자신의 뒤에 여러 국회의원을 병풍처럼 세워두고 환하게 웃는 그를 보니 “내 세상을 만났다”고 말하는 듯했다.
전과자가 사회에 복귀하려면 죗값을 다 치르고 피해를 갚는 등 진심으로 반성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따라붙는다. 그런 사람이라야 사회 구성원으로 믿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생계 수단을 잃었을 법한데 정치판이나 방송판에서 권력을 쥔 사람들은 큰 죄를 저지르고도 점점 더 당당해지고 있다. 이를 보는 언론이나 대중도 익숙해져 그런지 비판의 목소리가 별로 없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하려는 사람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이 정도 잘못이면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퇴출시켜야 업계에 깨끗한 신인 한 명이라도 더 나타나지 않겠나.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피고인 한명숙은 그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자신의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에 비추어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라고 쓰고 징역형과 함께 추징금 8억8000여만 원을 선고했다. 한 씨는 아직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다. ‘새 세상’이 열린 덕분인가, ‘내 세상’이라 여기는 오만함 때문인가.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