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놓고 보면 홍 대표가 몇 달 새 손바닥 뒤집듯 했다. 대선이 한창이던 4월 그는 박 전 대통령의 출당 문제를 듣는 척도 안 했다. “정치적으로 시체가 됐는데 다시 등 뒤에서 칼을 꽂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했다. 제1 야당 대표로 취임한 뒤인 7월에는 “태극기 집회가 내 정체성”이라는 류석춘 교수(연세대 사회학)에게 보수 혁신의 칼자루를 안겼다. 그러더니 이제 와서 출당 카드를 꺼내 들고 “같이 물에 빠져 죽을 순 없다”고 한다. 자진 탈당할 기회를 주되 거부하면 출당하겠다는 압박에 나선 것이다.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과의 악연이 ‘정치적 핍박’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는 2005년 박근혜 대표 체제에서 혁신위원장을 맡아 ‘예선이 곧 본선’으로 불리던 2007년 한나라당(현 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의 룰을 만들었다. 대선 1년 6개월 전 당권-대권 분리 규정은 박 전 대통령에게는 불리한 룰이었다. 2007년 경선을 앞두고는 박 전 대통령이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캠프 합류를 제안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이런 일들로 밉보여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경남도지사 후보 경선과 ‘성완종 리스트 사건’ 수사 때 곤욕을 겪었다는 게 그의 평소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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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대표의 기억과 논리는 지극히 ‘독고다이’(‘특공대’라는 일본말로 홀로 싸운다는 의미)답지만 어찌 됐든 “보수의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라는 결론에는 이르렀다. 홍 대표가 탄핵의 본질과 ‘촛불 민심’을 오독하는 것은 유감이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과 국정 농단을 방조한 친박(친박근혜) 핵심과는 이제 선을 그어야 한다는 판단은 늦었지만 환영한다.
물론 박 전 대통령을 출당한다고 한국당이 세탁되지 않는다. 뒤틀리고 무기력한 보수 정당이 이 문제를 풀지 않고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점에서 출발점이라 말하는 것이다. 대선 때 ‘기호 2번’에게 표를 줬던 785만2849명의 상당수는 박 전 대통령을 지키라기보다는 보수 궤멸을 우려했다. 그렇기에 홍 대표가 이제 박 전 대통령을 보내려는 행위를 ‘말 바꾸기’라고 폄하하지 않으련다. 보수 혁신은 비로소 이제부터다.
홍수영 정치부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