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박홍인의 미식견문록 우리 명차 맛보는 찻집 9곳
싱그런 녹색빛을 지닌 찻잎이 한창 올라오고 있는 제주의 차밭. 바앤다이닝 제공
이런 궁금증에서 시작된 취재는 가히 ‘익숙함 속에서의 놀라운 발견’의 연속이었다. 녹차나 대추차나 똑같은 전통차라는 오해, 우리 차나무는 본디 일 년에 3∼4회 수확 가능하지만 수요시장이 없어서 1회만 수확하는 농가의 슬픈 현실, 고려시대에 꽃 피웠다는 찬란한 우리 차문화의 실종…. 반면 반가운 놀라움도 있었다. 지난해 차 산업 발전과 차 문화 진흥에 관한 법률이 공표됐다는 점, 무엇보다 ‘차’에 대한 재평가가 역설적이게도 커피의 소비 종주국인 ‘서양’에서부터 불어오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차 문화가 새롭게 꿈틀대고 있는 희망, 다각화되고 있는 티백의 가능성….
다산 정약용은 차를 즐기는 민족은 흥한다고 했다.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은 아직 일상다반사를 간직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도 잃어버렸던 문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찻물을 우려내고 따르면서 찻잔 위로 오가는 대화의 시간, 은은하게 이어지는 맛의 여운을 일상으로 초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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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한국 차’란 무엇인가?
흔히 ‘차 한잔할까’라고 한다. 이때의 차는 커피도 포함하는 관용적인 표현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차는 차나무의 어린 잎을 우리거나 달인 물을 뜻한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녹차나 홍차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식수용으로 마시는 보리차나 결명자차, 유자차나 생강차 같은 전통차, 약재가 들어간 한방차, 캐머마일 같은 허브티는 습관적으로 ‘차’라고 불리고 있지만 차나무의 잎을 쓴 것이 아니므로 ‘대용차’ 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발효 정도에 따라 종류가 나뉘는데 발효를 하지 않은 것이 녹차, 아주 조금 발효한 백차, 약간 발효한 청차, 완전히 발효한 홍차로 구분된다.
모양에 따라서는 제다 과정을 거친 후 찻잎 본래의 모양을 유지한 잎차, 증기로 쪄낸 찻잎을 그늘에 말려 분말로 만든 가루차(말차), 증기로 쪄낸 찻잎을 찧은 후 틀에 넣어 모양을 잡은 고형차(떡차 또는 병차)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차의 대부분은 녹차다. 뜨겁게 달군 솥에 찻잎을 골고루 뒤집어가며 익힌 후, 꺼내서 식히고 다시 덖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완성하는 전통 방식의 덖음 녹차가 대표적이다. 같은 차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도 녹차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제조 방법이 달라 서로 다른 맛과 향을 지닌다. 중국 차는 향으로, 일본 차는 색으로, 한국 차는 맛으로 마신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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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차 마시기 좋은 곳은 어디?
우리도 미처 모르고 있는 한국 차의 매력을 만끽하려면 어디를 가야 할까? 한국 찻집이라고 하면 흔히 오미자차나 대추차를 내는 전통 찻집을 연상한다. 잎차를 떠올렸다 해도 낯선 다구와 다도를 마주할 용기 앞에서 한번쯤 머뭇거리게 될 것이다. 이런저런 연유로 차 대신 커피를 선택해 왔다면 이제부터 스스로에게 한국 차에 대한 새로운 기회를 줘보는 것이 어떨까. 이미 티 문화가 세계적인 트렌드로 부상한 지 오래다. 여기 한국 차의 진미를 경험하기 좋은 새로운 찻집 9곳을 소개한다. 국내 차 명인의 차만 모아 수려한 차 맛을 뽐내는 카페부터 직접 블렌딩한 차를 코스처럼 내놓는 티 바까지 한국 차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이 꿈틀대는 찻집들. 하늘이 왠지 더 높아졌다고 느껴졌다면 한번 들러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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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차 문화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한국문화정품관의 4층에 티 라운지가 있다. 한국의 녹차부터 중국차와 대만차까지 폭넓은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 녹차는 경남 하동에서 3대째 수제 녹차를 생산하고 있는 조태연가의 것을 선보이는데 채엽 시기에 따라 구별된 우전·세작·중작·대작을 메뉴에 올렸다. 곡우 이전의 어린 찻잎으로 덖은 우전이 은은하면서 순한 향을 가진 최고급 녹차로 입문자도 어렵지 않게 즐기기에 좋다. 5월 중순에 채엽한 찻잎을 덖은 대작 또한 구수한 맛이 감돌면서 친밀한 맛을 낸다. 상주하는 전문가들이 차를 추천해주고 설명을 곁들여주니 반갑기만 하다. 차를 즐기고 한 층씩 내려가면 작가의 다구와 갤러리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새롭게 태어난 코리안 티 하우스, 더 라운지
파크 하얏트 서울 더 라운지의 죽로차.
편견을 깨는 티 바, 알디프
지난해 12월 우사단길에 오픈한 티 바 알디프는 차를 코스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3좌석 남짓의 작은 바에 앉으면 칵테일이 아닌 ‘차’를 내놓는다. 오래도록 중국에서 생활하며 자연스레 차를 즐기게 된 이은빈 대표가 직접 블렌딩한 차를 이용해 5가지 코스 메뉴만 선보인다. 요리가 아닌 차를 코스로 즐기는 콘셉트도 흥미롭지만 내놓는 차 메뉴도 하나같이 흥미롭다. ‘서울의 달 그레이’ ‘스페이스 오디티’ ‘나랑갈래’ 등 원료의 조합과 스토리텔링이 신선하다. 5코스를 여유롭게 즐기려면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순한 차로 시작했다가 점차 오묘한 컬러와 맛으로 안내하고 달콤한 쿠키와 함께 즐기는 메인 차를 거쳐 디저트 코스로 마무리된다. 예약이 필수다.
어제의 한옥에서 즐기는 오늘의 티 타임, 아름다운 차 박물관
빛바랜 단아한 한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전국 다원에서 공수한 차 컬렉션을 선보인다. 한옥 마당에는 멍석을 깔고 그 위에 좌석 테이블을 마련했으며 좌식 마루에는 소반을 준비해 운치 있는 티타임을 가질 수 있다. 무엇보다 지리산 송주 스님의 랑리차를 꼭 한 번 맛보길. 시중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귀한 차로 섬진강과 신선봉 아래 야생에서 자란 어린 녹차 잎을 따서 무쇠 솥에 아홉 번 덖은 후 한 차례 발효시킨 수제차로 부드럽고 은은한 향과 맛이 매력적이다. 한편, 고산요 이규탁 작가, 죽연 서영기 작가의 다구는 눈으로 먼저 차를 음미하게 한다.
대한민국 식품명인의 차를 한자리에, 이음
한국전통식품문화관 이음의 야생 녹차 순향.
디자인을 입은 한국 차, 티 콜렉티브
“1분 1초, 바쁘게 움직이는 청담동에서 잠깐이나마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하나쯤 있었으면 했어요.” 이곳을 이끄는 김미재 아트디렉터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한국 차를 내놓는다. 직접 하동에 내려가 발품을 팔아가며 고른 녹차와 홍차를 메뉴에 올렸는데 손님이 차를 고르면 전통 다기가 아닌 비커와 슬라이스 등 현대적인 도구들이 등장한다. 둥근 유리 볼의 드리퍼에서 찻잎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광경은 바라보고 있기에도 재미나다. 다소 딱딱하게 다가오는 전통 다도 대신 차에 접근하는 문턱을 낮추기 위한 시도였다고. 물론 전통 다기도 사용하고 있다. 금귤 말랭이, 참외 말랭이 등을 차와 함께 즐길 다과로 내놓는다.
도심 속 작은 제주, 오설록
오설록의 녹차라떼 더블 샷.
박홍인 바앤다이닝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