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영 통일부 통일정책협력관
ARF 의장성명에서 보듯 아세안을 상대로 북핵 외교를 펼치는 데는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 버티고 있다. 아세안 10개 회원국 모두 북한과 수교국인 데다 비동맹 국가의 전통과 옛 사회주의체제의 영향도 여전하다. 2000년 북한의 ARF 가입 이후 일정기간 의장성명 표현이 남북한 사이에서 더욱 중립적으로 이동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북한 문제에 중립성을 지향하는 아세안의 태도는 단지 이들이 북한과 수교국이라는 데에만 머물지 않는다. 아세안 국가들에 공통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외교적 행위규범으로서 이른바 ‘아세안 방식’이 있다. 아세안 방식은 경쟁과 협상보다는 협의와 설득을 중시한다. 또한 아세안 국가들은 3R로 통칭되는 자제(Restraint) 존중(Respect) 책임(Responsibility)의 규범을 선호한다. 내정불간섭 원칙도 중요하다. 강압보다는 예방과 조정의 외교를 중시한다. 아세안이 내세우는 이러한 규범은 ARF에서 북한의 도발과 같은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회원국 간 견해차가 드러날 때마다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대화를 통해 얻은 결론 중 하나는 대(對)아세안 북핵 외교에서 일회성 목표를 설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ARF가 열릴 때마다 성공과 실패의 성적표에 일희일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치는 않다. 아세안 국가들의 정서와 관행을 감안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공식·비공식 대화가 더욱 중요하다. 아세안 회원국 정부와 전문가들이 북한의 핵개발을 엄중히 규탄하면서도 대화 해법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지난 반세기 동안 아세안이 추구해온 신뢰 구축과 조정 외교, 협의를 통한 결론 도출 등 스스로의 외교규범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세안이 북핵 문제를 다루는 게임의 해결사가 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빅매치에는 프로모터도 필요한 법이라는 점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성기영 통일부 통일정책협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