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 국제부장
한 달 뒤 부시 대통령은 장 주석에게 “외교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은 북한에 군사 공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협박을 했다. 중국은 그제야 움직였고 6자회담이 시작됐다. 동맹이론에 나오는 ‘연루의 위험’을 자극한 결과였다. 강한 동맹국(중국)이 약한 동맹국(북한) 때문에 원치 않는 전쟁에 말려드는 위기를 말한다.
15년이 흘렀고 달라진 환경이 많지만 비슷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내뱉고 있는 대북 군사대응론 역시 비슷하다. 북한을 때리겠다는 협박은 사실 중국을 향한 외교적 압박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적 옵션을 완전히 장착했다” “화염과 분노” 운운하며 군사적 대응 카드를 들고나오자 시 주석이 먼저 11일 백악관에 전화를 걸었다. ‘연루의 위험’ 자극 작전이 먹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조사에 나서겠다는 경제보복 카드를 빼들어 베이징을 추가 압박하고 있다.
북한이 괌 포위 타격 훈련을 한다는 것도 공갈일 가능성이 크다. 미사일 4발이 미국 영해 인근에 떨어진다면 미국의 요격은 물론 선제타격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핵미사일 몇 개로 초강대국 미국의 군사력을 막을 수 있는 척 허풍을 떨고 있는 북한의 무력 도발을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가 말한 ‘허세정책’이라고 본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2주째 모습을 보이지 않는 김정은은 미국의 군사대응을 피하고서도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기묘한 도발 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그가 각종 핵미사일로 한미동맹에 균열을 내 미국을 한반도에서 쫓아내고 적화통일을 한 뒤 다시 미국과 수교하는 ‘베트남 방식’을 꿈꾸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은 별론으로 하고 말이다.
요컨대 최근 북-미 간 전쟁불사론의 본질은 ‘정치적 공갈’이다. ‘정치의 마지막 수단으로서의 전쟁’은 아직 현실이 될지 알 수 없는 가상의 일이다. 최근 사설을 통해 ‘트럼프는 하지도 못할 군사대응을 떠들고 다니며 신뢰를 잃지 말라’고 경고했던 뉴욕타임스(NYT)마저 전쟁 시나리오 기사를 싣고 있는 상황이지만 미국발 기사들의 메시지는 비슷하다. 모든 군사 옵션의 성공 가능성은 불확실하지만 이에 따른 피해는 확실하고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