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사태 1년
지난해 8월 글로벌 7위 해운사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 1주년이 됐다. 국내 해운업계는 아직 격랑 속이다. 세계적으로 선복량(적재 능력) 공급 과잉이 계속되면서 해운사들 사이에서는 노후 선박 매각 가능성 얘기가 나오고 있고 한진해운의 미주노선 일부를 기반으로 탄생한 SM상선도 뚜렷한 실적을 내지 못해 불안감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내 1위였던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국내에선 현대상선(글로벌 13위)만이 유일한 글로벌 해운사로 남았다. 미주노선을 주로 운항하는 SM상선은 글로벌 선사 축에 들기엔 영세한 수준이다.
현대상선은 한진해운 사태로 발이 묶인 화물 수송 뒷수습을 도맡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진해운이 갖고 있던 굵직한 고객사들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 코스코(중국), MSC(스위스), APL(프랑스) 등 대형 해외 선사들이 한진해운 물동량을 나눠 차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해운 전문매체 JOC 자회사 피어스 데이터에 따르면 비중이 가장 큰 미주노선에서 현대상선은 올해 2분기 기준 점유율 5.7%로 글로벌 선사 중 9위에 머물렀다. 지난해 같은 기간 한진해운(7.1%)과 현대상선(3.8%)의 점유율을 합친 것의 절반 수준에 그친 셈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사태 당시 현대상선이 추가 선박을 투입해 적체 물량을 대부분 소화하긴 했지만 월마트 등 대형 고객사는 이미 ‘이제 한국 선사를 어떻게 믿겠느냐’는 분위기로 돌아선 상태였다”고 말했다.
김인현 해상법연구센터 소장은 “근 20년간 머스크가 선복량을 15배로 늘리는 동안 현대상선은 3배밖에 확대하지 못했다. 외국 선사들이 선박 대형화와 M&A를 통해 규모의 경제로 불황에 대응하는 동안 한국 선사들은 조금씩 뒤처져 온 것”이라며 “결국 급격한 위기를 맞아 양 사와 채권단이 협력해 합병을 논의할 시기를 놓쳤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발표한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이 새 정부 들어서도 추동력을 가질지도 주목된다. 정부가 설립한 한국선박해양을 통해 선사들의 중고선을 매입함으로써 유동성을 제공하는 방안은 일부 실현됐지만 신규 선박 발주 지원을 위한 펀드 조성 등은 새 정부 들어 업계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다.
하나 남은 대형 외항 선사인 현대상선이 한국 해운 산업의 향방을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 지원 같은 소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위기에 대비한 고강도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전체의 85% 수준으로 컨테이너선에 치중돼 있는 사업구조에서 자동차운반선이나 유조선 등의 비중을 높여 경기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견고한 형태의 글로벌 얼라이언스에도 다시 도전해야 한다. 전준수 서강대 경영학부 석좌교수는 “세계적으로 선복량이 과잉 공급돼 있는 현 상황에서 몸집은 작지만 고속을 낼 수 있는 선박을 투입해 프리미엄 서비스를 내놓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현대상선이 직접 나서서 마켓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정신을 가져야 살아남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