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강과 서민보호 위한 송나라 왕안석의 개혁신법 조정이 유통에 개입하고 저금리 단기대부업도 나서 내용과 의도는 좋았으나 ‘실시 과정’에서 변질돼 실패… 관료 정신재무장이 우선돼야
신세돈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왕안석 개혁신법의 내용은 이렇다. 먼저 균수법(均輸法)은 국가에 필요한 공물(특산물세금)의 계획을 미리 세운 다음 불필요한 공물은 시장에서 매각하여 그 돈으로 물자를 시장에서 매입하자는 제도였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정부가 유통 중개업에 적극 참여하여 국가재정을 확충하면서 동시에 납세자의 편익을 증진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송나라 조정은 극렬하게 반대했다. 기득권의 반발도 반발이지만 균수법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유통을 담당하는 관료들의 부당한 개인 이익 편취, 부패 부조리 혹은 횡포가 더욱 결정적인 이유였다.
청묘법(靑苗法)은 춘궁기에 국가가 저리로 농민에게 대출해 주는 제도였다. 당시 민간 대부업자의 대부이자는 5, 6할이었으나 국가는 2할만 징수하였다. 국가가 저금리 단기 대부업에 뛰어든 것이다. 반대가 격렬했다. 고리 대부업자, 즉 지주의 이해가 침해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사마광, 구양수, 정호, 정이 및 소식 등 당대 최고의 유학자들마저 고리 대부업자를 두둔하기 위해 청묘법에 반대했다고 믿기는 정말로 어렵다.
모역법(募役法)도 그렇다. 당시 농민들은 재산 정도에 여러 가지 국가의 직역(職役)을 담당해야만 했다. 직역이란 정부의 여러 잡무를 대신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직역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국가창고를 관리하거나 혹은 세금으로 징수한 곡물을 운송하는 업무였다.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결손액을 스스로 변상해야 했다.
정부는 배상 능력이 있는 지주계층에 이런 직역을 배정했다. 그러나 국고관리 혹은 운송을 잘못하여 파산하는 지주나 농민이 속출하면서 도망가거나 혹은 자살하는 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정부가 돈을 받고 직역을 면제해주는 대신에 그 돈으로 직역을 맡을 전문가를 모집하는 제도가 모역법이다. 지주에게도 좋고 일을 얻은 자에게도 좋고 국가도 좋은 일거삼득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실시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소요되는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거두었고 나아가 직역을 담당하지 않던 극빈 농민에게도 면역전을 부과하면서 반대 여론이 비등했다. 맞춤형으로 농민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모역법 또한 ‘실시하는 과정’에서 변질되어 농민에게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시역법(市易法)도 그렇다. 당시 중국에도 후려치기 바가지 등 상인들의 갑질이 있었다. 왕안석은 호상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 국가자본을 들여서 시역무(市易務)란 기구를 개설하였다. 팔리지 않는 물건(滯貨)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저가로 방매하자는 것이었다. 시역무는 정부에서 설립한 도매기관, 즉 관영 무역회사인 셈이었다. 그러나 시역법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관료들은 독점 이익을 위협받은 호상들에게 적극적으로 매수당했다. 구법당은 물론 후궁까지도 매수당하여 황제를 움직였다. 결국 왕안석은 실각했고 개혁신법은 폐기되었다.
신세돈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