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올빼미 도하(渡河) 준비 끝.” 군대를 가본 남자라면 몇 번쯤 외쳐봤을 구호다. 유격훈련장에 들어가면 계급과 이름 대신 헬멧에 쓰인 번호로만 불린다. 올빼미는 미국의 특공훈련을 처음 받은 육사 18기 생도들에 의해 작명됐다. 용감하고 기민한 데다 한반도 어디서나 서식하는 점을 감안했다고 한다. 교도소의 수인(囚人)들도 번호로만 불린다. 400만 명을 학살한 나치 치하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수감번호를 몸에 강제로 문신하기도 했다.
▷유격장에서 번호로만 부르는 것은 계급 낮은 훈련조교가 계급 높은 대상자를 거리낌 없이 훈련시키기 위해서다. 교도소에서 번호로 부르는 것은 재소자의 익명성 보호 차원도 있지만 효율적인 통제 관리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름 대신 번호로 부르는 것은 상대의 인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학교 수업시간에 교사들이 학생 이름 대신 번호로 부르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낸 것도 학생의 인격권 침해를 막자는 취지였다.
하종대 논설위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