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선거구제 개편’ 들고나온 靑… 의원들 동의할지 미지수

입력 | 2017-06-15 03:00:00

[개헌 시계 1년 앞으로]<3> 靑-국회, 팽팽한 ‘개헌 전초전’





7공화국 개헌이 이뤄지려면 여야는 먼저 선거구제 개편이라는 고차원 방정식을 풀어내야 한다. 선거구제 개편은 공직선거법 개정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개헌의 선결 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는 내용의 개헌을 하려면 먼저 선거구제를 바꿔 국회도 변해야 한다는 게 청와대의 기류다.

○ 선거구제 개편, 개헌의 필요충분조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여야 원내대표들과 만나 “선거구제 개편 등이 같이 논의된다면 다른 권력구조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구체적인 방향은 제시하지 않았지만 여의도 정가에서는 이 발언의 진의가 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권력구조를 개편하려면 국회의원을 뽑는 방식도 함께 바꿔야 한다는 뜻이라는 게 중론이다. 뒤집어보면 국회의원 선출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권력구조를 바꾸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개헌 논의의 주체는 국회다. 문 대통령도 굳이 정부에 별도의 개헌 논의기구를 만들기보다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국민 여론을 수렴해 논의하는 방식에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국회, 더 구체적으로 야권은 대통령의 권력 분산에 방점이 찍힌 개헌을 내심 바라고 있다. 문 대통령도 대통령의 권한 분산에는 동의하지만 지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지방분권형 개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지향점이 다르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반대하는 방향의 개헌은 추진력을 갖기 어렵다. 결국 청와대와 국회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개헌안을 도출하려면 선거구제 개편도 함께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여권 관계자는 “선거구제 개편이 개헌의 조건이라고 단정 짓긴 어렵지만 국회의원 선출 방식을 바꾸는 건 정치개혁을 위해 개헌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선거구제 개편은 개헌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 선거구제 개편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현행 소선거구제는 지역구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1명이 의원으로 당선되는 제도다. 반면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주장했던 중대선거구제는 현재 지역구를 좀 더 크게 합해 선거구별로 적게는 2명, 많게는 5명 이상까지 뽑는 제도다.

역대 국회의원 선거는 9∼12대 국회(1973∼1988년)에서 채택했던 중선거구제를 제외하면 모두 소선구제로 치러졌다. 선거구당 의원을 1명만 뽑는 소선거구제 방식은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독점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20대 총선 결과만 봐도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 자유한국당은 영남, 국민의당은 호남에서 의석의 다수를 차지했다. 문 대통령의 생각은 이런 국회의 구도를 가능하게 하는 선거구제는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한다면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현재 수도권의 민주당 의석은 줄어드는 대신 야당의 의석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영남과 호남에서도 현재 다수를 차지하는 당의 의석수 감소는 불가피하다. 자신들의 목숨줄과 직결된 선거구제 개편은 여야를 떠나 의원들이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수도권의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내 자리가 없어질 게 뻔한 제도를 누가 동의할 수 있겠느냐”며 “당선과 낙선이 걸린 문제는 합의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 선거구제 개편 대신 선거제도 개편?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기 어렵다면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선거구제를 바꾸는 대신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201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2 대 1 이하로 조정하라”는 결정을 내린 뒤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불거졌지만 당시 여야는 선거구 일부만 다시 획정하고 마무리했다. 그만큼 찬반이 뜨거운 이슈였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1인 2표제다. 지역구 후보에게 1표, 정당에 1표를 투표해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전국구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방식이다. 반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비례대표 국회의원 수를 늘리면서 권역 내 정당득표율에 따라 정당별로 의석수를 먼저 배정한다. 이렇게 배정된 의석수만큼만 각 정당이 의석을 나눠 갖기 때문에 특정 정당이 지역구 의원을 독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결국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비슷하게 지역주의 구도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2015년 선관위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적용해 의석을 할당해보면 실제로 지역별 정당 독식주의를 깨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정치권이 합의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선거구제, 선거제도 개편 모두 국회에서 여야가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개헌의 키를 문 대통령이 쥘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를 약속한 문 대통령은 청와대를 중심으로 개헌안을 마련해 국회와 절충할 여지가 생긴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