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임금 법제화, 기대와 우려 교차 대기업-中企 임금격차는 차별의 문제로 접근해선 안돼 하청구조 개선 등 실질 방안 찾아야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평등 원칙은 각국의 법적 전통과 법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법제도에 대한 공통의 기반을 형성했다. 평등과 정의는 서로 불가분으로 연결돼 있다. 평등 원칙은 어떤 분쟁 사례의 시비를 가리기 위한 최종적인 판단 기준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평등 원칙은 정의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근로자를 차별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정의의 관점에서 노동법의 오래된 고민이었고, 그에 따라 차별 해소를 위한 법제도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무엇이 정의인가’는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된 오랜 논쟁 주제였지만 여전히 일반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에 관계없이 최소한 동의하는 부분은 ‘같은 것은 같게’ 취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차별 금지에 관한 사상적 기초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문제는 엄밀히 말하면 차별의 문제가 아니다. 평균적으로 중소기업의 근로자는 대기업 근로자보다 약 40%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이 정부 통계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부지기수이다. 장기간에 걸쳐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 인상률은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에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 인상률은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임금 격차는 지급주체(사용자)가 다르기 때문에 법률상 차별로 볼 수 없다. 이러한 격차 발생의 주된 원인이 원청과 하청기업 간의 불공정 거래라는 지적이 많다. 또한 대기업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임금 인상이 격차의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마도 지금과 같이 5차, 6차에 걸친 다단계 하청구조를 한두 단계만 줄여도 임금 격차를 대폭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원·하청 근로자 간의 임금 등 근로조건 격차를 줄이고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차별시정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자리정책의 핵심 과제이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해법이란 것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그 의미는 사실상 도급 또는 용역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직접고용),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법제화라면 지나치게 이념적이거나 안이하다는 평가밖에 나오지 않는다. 몇 단계를 뛰어넘어 검증되지 아니한 처방전을 내놓기보다는 노동시장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면서 효과성을 높일 수 있는 실용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또다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노동시장 및 노동정책의 입안자들이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접근해 주길 기대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