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을 즐기다/히라노 게이치로 지음/조영일 옮김/180쪽·1만3000원·아르테
폴란드 쇼팽의 생가에서 저자가 직접 촬영한 쇼팽 가족의 초상화. 위쪽이 부모인 미코와이(1771∼1844)와 유스티나(1782∼1861)이고, 아래가 쇼팽(왼쪽에서 세 번째)을 비롯한 남매들이다. 저자는 쇼팽 가족의 유복한 환경이 그의 천재적 재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된 배경이었다고 분석한다. 아르테 제공
저자는 일본의 천재 소설가로 불리는 히라노 게이치로다. 그는 교토대 법학부 재학 당시 발표한 소설 ‘일식’으로 1999년 일본 최고 권위의 신인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당시 역대 최연소 수상자였다.
이 책은 2005년 쇼팽을 주인공으로 다룬 소설 ‘장송’을 위해 준비했던 작가의 취재노트를 바탕으로 한다. 책은 생동감 넘치는 르포 기사를 보는 듯하다. 작가는 쇼팽이 태어나고 자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와 전성기 시절 활동 무대였던 프랑스 파리, 고독한 말년을 보내야만 했던 영국 런던과 맨체스터까지 직접 발로 뛰며 사진을 찍고 기록했다. 특히 파리에서 쇼팽이 거주했던 9곳의 집을 모두 방문해 지도에 꼼꼼히 표기하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덕질’(덕후 활동)의 새로운 경지를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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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뿐만 아니라 쇼팽의 주변 환경도 비교적 유복했다. 쇼팽이 폴란드인이란 외국인 신분에도 파리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당대 최고의 부자였던 로스차일드 가문이란 든든한 물주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운명의 여인 상드와의 연애 역시 그의 천재적인 작곡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고 지적한다.
당시 시대 모습을 유추해 보는 것도 책 읽는 재미다. 저자는 ‘쇼팽은 어떤 냄새가 났을까?’라는 다소 황당한 의문을 시작으로 쇼팽의 냄새를 추적한다. 1800년대 초반 프랑스 상류층 위주로 전신욕이 보급된 사실과 쇼팽이 콘서트를 꺼리고, 귀족 자제의 개인 레슨을 자주 했다는 점 등을 토대로 쇼팽에겐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났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부분에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설 ‘레미제라블’의 배경이었던 프랑스의 1848년 2월 혁명 때문에 영국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던 쇼팽의 기구한 운명 역시 생생하게 그려낸다.
아쉬운 점은 저자도 고백하듯 깊이 있는 쇼팽에 대한 정보를 위해선 다른 책을 좀 더 찾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쇼팽과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초심자에겐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정보를 담고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