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
고요하게 곡이 시작되고 가만가만 움직이는 현악을 배경으로 플루트가 잔잔한 물의 흐름 같은 분산화음을 연주합니다. 새벽, 연인을 해적들에게 빼앗긴 양치기 다프니스가 님프의 동굴 앞에서 실신해 잠들어 있습니다. 아침 안개가 점차 걷히고, 피콜로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동의 피리 소리를 묘사합니다. 천천히 미동하던 현의 움직임은 점차 빨라지고, 마침내 전체 관현악의 찬란한 합주가 지평선 위로 떠올라 만물을 비추는 태양의 축복을 나타냅니다.
이 곡이 나온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오케스트라의 기능이 복잡해지고 음악에서도 눈으로 보는 듯한 세밀한 묘사, 즉 ‘회화성’이 중요한 이슈가 되었던 시대입니다. 해돋이 같은 자연현상을 음악으로 나타낸 작곡가들도 많았죠. 폰키엘리의 오페라 ‘라 조콘다’에 나오는 ‘시간의 춤’이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에도 멋진 해돋이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푸르게 펼쳐진 봄에서 초여름, 하루를 함께 시작할 만한 해돋이 음악으로는 이 라벨의 작품만 한 것이 없게 느껴집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