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銀 위탁보증제 시범 시행
중소기업 A 사장은 요즘 고민이 많다. 20년 이상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을 받아 돈을 썼는데 올해 하반기(7∼12월)부터 은행들이 20년 넘은 보증 기업의 보증 업무를 위탁 관리한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이다. A 사장은 은행들이 ‘옥석 가리기’를 통해 보증 문턱을 높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은행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보증 감축 목표를 채우려면 20년간 장기 대출을 이어온 기업 고객의 대출을 조여야 하는 껄끄러운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7월부터 은행들이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등 보증기관으로부터 보증을 받은 지 20년 이상 된 기업들을 대상으로 보증 심사를 대신해 주는 ‘위탁보증제’가 시행된다. 위탁보증제는 장기 보증 기업의 추가 보증이나 연장 심사 등을 신보나 기보 대신 은행이 맡는 제도다. 우선 내년 말까지 진행되는 시범사업에는 신한 KB국민 KEB하나 우리 NH농협 IBK기업은행 등 시중은행 6곳이 참여한다.
기업들이 은행의 ‘위탁보증’을 걱정하는 이유는 보증 문턱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별로 보증을 받은 지 20년 이상 된 기업들의 보증 총량을 내년 말까지 10∼15%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이를 통해 확보한 보증 여력을 초기 기업에 집중하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는 최근 5년간 전체 보증 기업에서 보증 총량의 자연 감소치(10∼15%)를 적용한 것이다. 현재 보증 20년 차를 넘어선 기업들의 보증 규모는 약 5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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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2023년까지 위탁보증제 대상 기업을 10년 이상 보증 기업(9조 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시행을 한 달여 앞둔 상황에서 기업과 은행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2015년 11월 위탁보증제 도입을 발표했지만 은행권의 반발로 시행 시기를 올 초에서 7월로 미뤘다. 적용 기업의 범위도 ‘10년 이상’에서 ‘20년 이상’으로 좁혔다.
기업 경기가 좋지 못한 상황에서 은행이 기업들의 대출을 무작정 조이기도 어렵다. 은행권 관계자는 “20년 동안 보증을 갚지 못한 기업 중 다수는 어려운 사정에 놓인 기업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에게 대출을 갚으라고 하면 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은행들이 손을 놓을 수도 없다. 2019년부터는 기업 부실이 일정 한도(대출액의 4% 안팎)를 넘어서면 은행들이 다음 해 신보 및 기보에 내야 하는 보증 출연료가 올라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보증 출연료가 오르면 정상적인 기업들도 대출받을 때 내야 하는 보증료가 올라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은행권에서는 장기 보증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증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기업이 1년에 5%씩이라도 보증을 갚아 나가도록 해 보증을 점차 줄여 나가는 방향으로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