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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에게 ‘팽’ 당한 FBI 국장

입력 | 2017-05-11 03:00:00

대선때 ‘클린턴 이메일 재수사’ 결정… 당선 일등공신 전격 해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57)을 전격 해임했다.

코미 국장은 지난해 미 대선 막판에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메일 스캔들 수사’ 재개를 결정했던 인물이다. 유권자들에게 클린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키워 트럼프의 대선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당선 일등공신인 코미를 ‘토사구팽’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는 ‘코미가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 수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고, FBI를 효과적으로 이끌기에 부적합하다’는 법무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코미를 해임했다.

코미는 지난주 미 상원 청문회에서 클린턴 이메일 스캔들과 관련해 잘못된 진술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당시 그는 “(클린턴의 최측근인 후마 애버딘이) 수백, 수천 건의 이메일을 (전남편에게) 포워딩했고, 일부는 기밀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FBI는 ‘애버딘이 포워딩한 이메일은 소수였다’는 내용의 서한을 의회에 보내 코미의 발언을 정정했다.

미 정계에서는 코미의 발언에 문제는 있었지만 전격 경질할 정도의 심각한 사안은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특히 미국 안보의 중심 축 중 하나인 FBI 수장을 임기가 6년 반이나 남은 상황에서 갑자기 해임한 게 석연치 않다는 것. 더구나 코미는 자신이 해임됐다는 것을 전혀 몰랐고, 관련 언론 보도를 접한 뒤에는 장난인 줄 알고 웃었을 만큼 수모를 당했다.

이에 따라 코미의 실제 해임 이유가 현재 FBI가 진행 중인 트럼프 대선 캠프의 러시아 내통 의혹 수사에서 나올지 모를 트럼프에게 치명적인 내용을 덮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코미는 원칙주의 성향이 강하고, FBI의 독립성을 강조해 온 만큼 트럼프에게 불리한 내용을 그냥 두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미는 올해 3월 미 하원 정보위원회에서 열린 트럼프의 러시아 내통과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트럼프 캠프 도청 의혹 관련 청문회에서 대통령에게 불리한 발언을 했다.

반(反)트럼프 진영은 코미 해임에 대해 러시아 내통 수사를 중단시키고, 나아가 입맛에 맞는 인사를 FBI 수장으로 앉히려는 시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은 (코미) 해임에 대해 ‘은폐(cover-up)’를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같은 당 밥 케이시 연방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은 자신의 트위터에 “(탄핵당한 대통령인) ‘닉슨 같은(Nixonian)’ 행동이고, 당장 법무부는 특검을 임명해 러시아 내통 의혹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NYT 같은 주요 언론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수사를 맡은 특별검사를 해임한 사건을 말하는 ‘토요일 밤의 대학살’에 비유하는 등 비판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한편 트럼프는 코미의 후임으로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과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 같은 최측근들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FBI 국장에 내정될 경우 트럼프 반대파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