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당선되면 트럼프에 공로패 줘야 한다는 말 나와 韓진보-美공화 정부 최악 궁합… 사드 청구서에 ‘No’ 당연하나 盧처럼 떠들면 국익 도움 안돼 차기 정부 불거질 핵무장 이슈… ‘선의’ 믿은 우크라이나 보라
박제균 논설실장
최근 방한한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문 후보 측에 “북한이 한국 진보진영에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북이 한국 대선을 의식해 도발을 자제한다는 뉘앙스다. 그러나 북이 남쪽을 의식해 핵개발의 페이스를 조절할 것으로 믿는 것은 단견(短見)이다. 그랬다면 세계 최빈국 수준의 나라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직전까지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상대의 예측을 불허케 하는 트럼프의 ‘미치광이 협상전략(Madman Negotiation Strategy)’에 간을 보는 단계일 것이다.
트럼프의 대북 강경책은 문 후보 지지자를 결집시켰을 뿐 아니라 일부 중도층 사이에서 전쟁 불안감을 부추기기도 했다. 여론조사에서 외교안보 위기와 남북관계를 잘 다룰 대선 후보 1위에 문재인이 꼽히는 것은 전쟁 불안이 일등공신이다. 트럼프는 10억 달러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청구서와 ‘끔찍한(horrible)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폐기’ 카드로 문 후보에게 ‘애프터서비스’까지 해줬다.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문재인-트럼프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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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후보가 그의 저서에서 “미국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반미주의자면 어떠냐”고 주장했던 노무현 발언의 문재인 버전이다. 주권을 가진 대한민국은 미국 아니라 미국 할아버지라도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시끄럽게 떠들어서 문제를 키울 필요는 없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돼서도 “미국은 일절 오류가 없는 국가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따져야 한다고 장관들에게 코치까지 했다.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언행이었다.
문 후보든, 누구든 차기 대통령은 트럼프의 사드 청구서에 당연히 ‘노’라고 해야 한다. 다만 트럼프가 동맹국에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고 그대로 따라할 일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 안보가 한미동맹으로부터 ‘홀로 서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반공포로 석방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이끌어낸 이승만처럼 ‘위대한 노’를 할 줄 알아야 한다.
핵개발 역사를 돌아보면 차기 대통령 임기에 동북아 핵무장 이슈가 불거질 것은 자명하다. 미국의 핵개발은 소련을, 소련의 핵개발은 영국 프랑스를 자극해 핵보유국으로 만들었다. 이어 중국→인도→파키스탄으로 핵 도미노는 이어졌다. 핵 도미노의 연결고리는 적국 혹은 인접국이 ‘절대 무기’ 핵을 보유할 때 느끼는 위협이다.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발돋움하는 터에 일본을 필두로 한국과 대만도 ‘핵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장 한국에선 전술핵 재배치 이슈부터 불거질 것이다. 차기 대통령은 미국의 ‘핵 확산 금지’ 정책에 순순히 ‘예스’를 말해선 안 된다. 소련 붕괴로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러시아의 집단안전보장과 지원 약속을 믿고 갖고 있던 핵무기를 전량 폐기한 뒤 러시아로부터 침공을 당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타국의 ‘선의’만 믿고 자강을 게을리했던 나라가 맞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트럼프의 출현은 우리가 언제까지나 미국의 선의에만 기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이 점에서 역설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에 ‘노’하라. 단, 은밀하게 위대하게….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