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잔혹사/홍석률 지음/308쪽·1만5000원·창비
1960년 4월 25일 이승만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경남 마산의 할머니 시위대. 창비 제공
이승만 대통령이 사임 의사를 밝히기 하루 전인 1960년 4월 25일 오후 마산에서는 ‘죽은 학생 책임지고 리 대통령 물러가라’라는 구호가 쓰인 플래카드를 든 할머니들의 시위가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역사는 비슷한 시간 대학교수들이 집회를 열고 시위에 가담한 것만 기억한다. 할머니 시위대의 구호가 더 명확한 정권 퇴진 요구를 내걸었음에도 그렇다.
1960년 4월 혁명이 ‘젊은 사자들의 항쟁’ 또는 뒤늦게 항쟁에 참여한 대학생과 교수단의 역할을 중심으로 기억되는 건 지식인들이 역사 서술의 재료가 되는 기록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엘리트는 기록을 많이 남기고, 당대 언론을 통해서도 주목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여성을 비롯한 주변부의 사람들은 스스로 기록을 남기기도 어렵고, 잘 기록되지도 않아 잊혀진다.
이 밖에 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뒤 1983년 청송교도소에서 재소자의 권리를 주장하다 구타당해 사망한 박영두 씨, 1951년 겨울 경남 산청군 소정골에서 학살당한 이들의 이야기 등이 그려진다.
저자는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로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에서 방문연구원을 지냈으며 한국냉전학회 연구이사, 역사비평 등 학술지 편집위원을 지냈다. 마치 결과를 향해 단선적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이해되기 쉬운 게 역사다. 책은 역사에서 다양한 갈림길과 가능성이 교차하고 경합하는 과정과 작은 개인, 집단의 선택이 맞물리며 어떤 커다란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추적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