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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8년 만의 전직 대통령 검찰 출두… 國格을 생각한다

입력 | 2017-03-20 00:00:00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일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는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모습이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로 방영될 것이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박연차 게이트로 검찰 조사를 받고 나서 비운의 선택을 했다. 또 한 명의 대통령이 8년 만에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는 모습은 당사자도 불행한 일이지만 국가로서도 수치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과 특검의 공소장에 뇌물 등 13개 혐의의 공모자로 등장한다. 박 전 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검찰과 특검의 방문 조사에 협조했다면 공개적으로 검찰에 소환되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검찰 소환은 탄핵으로 파면되기 전 대통령이란 지위를 이용해 강제 수사를 피해 온 그의 자업자득이다. 일반인으로 돌아온 이상 일반 피의자와 다름없는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박 전 대통령과 공모 관계에 있는 최순실 씨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비서관 등 주요 혐의자들은 모두 구속 기소돼 이미 재판을 받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최 씨의 사익 추구를 몰랐다”, “뇌물은 엮은 것”이라며 혐의를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마저 부인한다면 검찰은 이미 구속된 피고인들과의 형평성을 들어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헌법적 절차에 따라 평화적으로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민주주의의 수준을 높인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얼마 전까지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구속돼 수사를 받기 위해 구치소와 검찰청을 오가는 모습은 국격(國格)을 생각해서라도 바람직하지 않다. 박 전 대통령이 먼저 사실관계에 대한 솔직한 진술로 조사에 협조해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라는 칼을 뽑지 않을 명분을 줘야 한다.

우리나라의 수사 관행상 구속은 법원에서 실형 선고가 예상되는 중대 범죄 혐의자에 대해 미리 처벌하는 성격도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그런 의미의 사전 처벌로 말한다면 탄핵으로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본다. 구속영장 청구 여부는 검찰이 여론과 미래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독자적으로 결정하되 구속의 실익이 없는 한 불구속 수사라는 원칙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건국 이후 이승만 전 대통령은 시민들의 시위로 하야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하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정권을 찬탈한 혐의로 퇴임 후 감옥에 갔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형이 수감됐다. 내각책임제 또는 과도기의 대통령 2명을 제외하면 대통령 9명이 모두 불행한 말로를 겪었다.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는 그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된 이 불행한 역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심각한 숙제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