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세 ‘눕방’의 매력
처음엔 눕방이 뭔지 몰랐다. 노래방, 편의방 할 때 그 방이라면 만성피로의 에이전트7에겐 당장 그것이 필요했다. “아재네. 눕방도 몰라요? 누워서 하는 방송!” 후배 요원의 핀잔에 그는 방을 찾다 말고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모바일용으로 제작된 누워서 하는 방송인 ‘눕방’ 화면들. 가수 태연, 정채연, 수지, NCT, 트와이스, 배우 주원이 출연한 모습. 방송 하나당 생방송 조회 수가 많을 경우 250만 건에 이르기도 한다. 네이버 V앱 화면 캡처
○ ‘세로-이슬-눕방’…스마트 시대, 칼 군무 대신 눕고 망가지라
가요 홍보대행사 포츈엔터테인먼트의 이진영 대표를 만났다. “요즘 그런 거 보셨죠? 배우 공유와 영상통화를 하거나 강동원한테서 부재중 전화 300통 온 것처럼 휴대전화 화면 꾸민 합성 이미지.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스마트폰으로 수렴하면서 스타와 친근감을 극대화하는 방식도 변했죠. 눕방 보세요. 세로 화면, 아이 콘택트…. 친구랑 영상통화를 가로로 하진 않죠?”
눕방의 인기를 이해하려면 최근 몇 년 새 일어난 스마트폰 최적화 영상 콘텐츠 열풍을 살펴봐야 한다. ‘세로 라이브’ ‘이슬 라이브’ ‘자장가 라이브’를 기획한 메이크어스의 김홍기 이사를 만났다.
“가수가 술 마시고 노래하는 걸 보여주는 이슬 라이브는 제가 공연기획사에서 일할 때 경험에서 착안했습니다. 공연 뒤풀이에서 가수들이 ‘○이슬’ 마시며 흥에 겨워 노래하는 걸 휴대전화로 찍었는데, 이게 너무 귀한 영상인데 유포할 수도 없고 나만 보자니 아까웠죠. 시청자들도 마치 그런 자리에 합석한 느낌을 받았으면 했어요.” ‘세로 라이브’는 젊은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전화기를 돌리지 않고 세로 상태 그대로 영상을 보기 좋아한다는 데서 착안했다. 2015년 말 EXID 하니의 달콤한 영상과 목소리로 화제가 된 ‘자장가 라이브’도 스타의 면전에 누운 느낌을 준다.
눕방은 실제로 어떻게 찍을까. 촬영 장소는 스타의 침실이 아니다. 출연자의 분위기에 맞춰 수도권 곳곳의 스튜디오를 섭외한 뒤 스타의 방처럼 꾸며 촬영한다. 촬영은 전문 영상 카메라가 맡는다. 특수 제작한 ‘ㄴ’자 받침대에 물린 카메라를 삼각대나 지미집에 90도 돌려 장착해 휴대전화 같은 세로 화면을 구현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스타의 모공까지 소장하고 싶다’는 팬들의 니즈에 맞춰 좋은 화질로 찍는 것도 중요해졌다”고 했다.
세로가 능사는 아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서 정사각형 프레임 영상이 사랑받자 딩고 뮤직은 ‘큐브 라이브’를 내놨다. 가수들이 한 변이 160cm인 정육면체 공간에 들어가 노래하는 형식. 웹 예능 채널 ‘모모 X’는 주차된 차 앞에서 노래하는 ‘블랙박스 라이브’도 선보였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열풍이 분다. 브루노 마스, 머라이어 케리가 차량 조수석에 앉아 열창하는 ‘카풀 가라오케’, 아델 메탈리카가 멜로디언, 실로폰 반주에 노래하는 지미 팰런 쇼의 음악교실 라이브도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이런 폐쇄형 라이브의 인기 비결은 뭘까.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혼밥, 혼술 같은 ‘혼-’ 문화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나 홀로 시청자’들은 모바일 영상을 정좌하고 보지 않습니다. 누워서든, 비스듬히 앉아서든 편하게들 보죠. 거기 꼭 맞는 가장 친근한 관점이 눕방에 반영된 거죠.”
눕방을 보던 에이전트7은 문득 가수들의 만성 감정 피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끄고 천장을 바라봤는데…. (다음 회에 계속)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