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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D/ Opinion]“태극기가 결코 부끄러워선 안 된다”

입력 | 2017-02-14 11:02:00

악(惡)은 메마른 가슴에 깃들어…
맹목적 ‘충성’과 ‘애국심’이 자양분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반대 시위를 벌인 보수단체 회원과 시민들.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이 아니다”라는 빤한 거짓말로 가득했던 청문회가 끝나자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 “자백을 강요받았다”며 까무러치는 연기까지 하는 상류사회 사람들이 등장했다. 게다가 “역사상 가장 청렴한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한다는 자칭 ‘애국세력’의 집회에 성조기가 등장하더니, 심지어 중국 정부의 지시로 6만 명이 넘는 중국유학생이 촛불집회에 참석해 현 정부 전복을 기도한다는 주장까지 난무한다.

“정치와 언론, 사법, 촛불세력이 국가전복의 무서운 비수를 차고 서로 합세해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 하며, 헌법을 무시하고 무조건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나서 무혈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하려 한다는 것을 애국시민이 분명히 보았다”고 기재한 유인물까지 배포됐다니 분노는커녕 실소와 탄식이 앞설 뿐이다.

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망가졌을까.

히틀러만이 나치스였던 건 아니었다. 요제프 괴벨스, 헤르만 괴링, 루돌프 헤스, 하인리히 힘러 등을 빼놓을 수 없고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도 있다. 그뿐인가, 한나 아렌트가 저 유명한 ‘악의 평범성’을 설파한 아돌프 아이히만 같은 실무자들도 있다. 게다가 히틀러를 압도적 지지로 총통에 추대하고 전쟁의 광기에 동조하며 열광하던 그 수많은 사람은 또 어떤가.

히틀러가 떠오르기 직전인 1919년 1월, 막스 베버는 뮌헨대학교 자유주의 학생단체의 요청으로 행한 저 유명한 강연에서 국가의 본질적 특성이 폭력이란 사실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정권을 잡아 국가를 경영하는 권력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인의 자질로 열정, 책임의식, 균형감각을 설파한 것이다.

‘열정’은 자기도취와 구분되는 대의에 대한 뜨거운 확신이라 했다. ‘책임의식’은 국가가 갖는 합법적 폭력 행사권이라는 수단을 위험하고 파괴적으로 휘두르지 않게 하는 덕목이다. ‘균형감각’은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 즉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어떤 열정도, 책임의식도, 균형감각도 갖추지 못한 채 권력자가 된 이를 보면서, 어두운 현대사 속에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키워간 그의 신민(臣民)들을 마주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강조한 것처럼, 분명 악은 공감 능력을 상실한 메마른 가슴에 깃든다. 그러니 지그문트 바우만도 "오늘날 악은 누군가의 고통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때, 타인에 대한 이해를 거부할 때, 말없는 윤리적 시선을 외면하는 눈길과 무감각 속에서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악은 애국심이나 의무감을 지닌 첩보요원이 어느 평범한 시민의 삶을 단호하게 파괴할 때 존재할 수도 있다"고 일갈했다.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아이히만이 입증한 것처럼, 독재정권이 유달리 강조하는 '애국심'이니 '충성'이니 하는 맹목적 가치들은 그대로 악의 자양분이 된다. 아이히만도 고문 기술자 이근안도 국정원 댓글의 주역인 ‘좌익효수'도 조직에 충성을 다한 성실한 공무원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 성실한 공무원들이 잔인한 고문을 하고, 사악한 댓글을 달며,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고발을 배후에서 사주하고, 상부의 지시를 들어 블랙리스트를 작성, 집행하며 범죄행위에 앞장섰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히만을 비롯해 전범재판에 넘겨진 누구도 잘못을 뉘우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죄책감에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민간인 사찰사건에서도, 국정원 댓글사건에서도 세월호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사건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대통령을 제대로 처벌하는 역사를 이루지 못한다면, 장래에도 우리 안의 아이히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에서의 승리, 그에 따른 출세와 치부를 칭송하던 우리 사회와 교육시스템은 이렇게 수많은 아이히만을 키워왔다. 충성을 앞세워 맹목적으로 굴종하며 영혼을 팔고, 부당한 지시라도 철저히 수행하는 성실성이 어느새 조직인의 덕목으로 자리한 것이다.

이제라도 또 다른 아이히만을 예방하려면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비판적으로 사유해야 한다. 그리고 악인과 가해자는 피해자의 명예와 품위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처벌돼야 한다. 그러니 현재 우리 앞에 벌어지는 이 부끄러운 상황들을 어떻게 갈무리하는지에 따라 결국 우리 사회의 명예와 품위가 결정될 것이다. 태극기는 결코 부끄러움의 상징이 돼선 안 된다.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방송문화진흥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