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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형저축-소장펀드 이어… ISA도 인기 시들

입력 | 2017-02-08 03:00:00

외면 받는 ‘관제 금융상품’




금융위원회가 국민 재산 증식을 위한 ‘국민통장’이라고 내걸며 대대적으로 내놓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가입자가 전(全) 금융권에서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나마 가입자가 꾸준히 증가하던 은행에서마저 지난해 12월 가입자가 처음 순감한 것이다. 다음 달 출시 1년을 맞는 ISA가 근로자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이나 소득공제장기펀드(소장펀드) 등 세제혜택을 앞세워 내놓은 정부 주도형 ‘관제 금융상품’처럼 시장 수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반짝 인기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증권·보험 이어 은행서도 가입자 순감

7일 ISA 전자공시 사이트인 ISA다모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은행권에서 가입자 수가 처음으로 8209명 줄었다. 신규 가입자보다 계좌를 해지한 사람이 더 많다는 뜻이다. 이미 증권업계는 7월부터, 보험업계는 8월부터 매월 가입자가 줄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ISA 총 가입자 수는 약 239만 명으로 전월보다 약 1만5000명이 감소했다.

최근 저금리와 ‘박스피’(주가가 일정 구간에서만 오르내림) 장세로 수익률이 부진해지면서 이탈이 늘었다. ISA 일임형 상품 출시 이후 누적 수익률 평균은 1.46%로 은행 정기예금보다 소폭 높은 수준이다. 누적 수익률이 1%를 넘은 상품은 전체 201개 중 108개(54%)에 그쳤다. 이 중 수익률이 9.63%인 상품(HMC투자증권 고수익추구형 A1)도 있지만 수익률이 ―2.88%(메리츠 ISA 중립형B)로 출시 이후 내내 원금을 까먹은 상품도 많았다.

ISA는 하나의 통장으로 예·적금, 주식, 펀드, 파생상품 등에 투자가 가능하다. 5년간 계좌를 유지하면 운용수익 200만∼250만 원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주는 상품으로 출시 첫 달에만 120만 명이 가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경기 침체로 보험과 적금까지 깨는 마당에 5년간 자금을 묶어놓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인기가 시들해졌다. 또 근로소득 원천징수영수증이나 사업소득금액증명원 등 소득증빙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등 가입 절차가 복잡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금융위는 올해 가입 대상을 확대하고, 세제 혜택을 늘린 ‘ISA 시즌2’를 내놓을 계획이다.

○ 긴 가입 기간, 적은 혜택에 외면받는 관제상품

ISA를 두고 박근혜 정부 들어 금융당국이 내놓은 재형저축(비과세)과 소장펀드(소득공제)같이 ‘관제 상품의 딜레마’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다 보니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한 의무 가입기간을 길게 잡아야 하고, 투자자들은 자금에 발이 묶여 급변하는 환경에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제 혜택은 세제당국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 보니 파격적인 혜택이 나오기도 어렵다. 또 정책 초점이 ‘서민’에게 맞춰져 가입, 혜택 대상도 한정됐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상품 출시 직후 정부 방침에 부응하기 위해 영업의 고삐를 당기는 초기에만 붐이 일다가 바람이 빠지는 과정이 반복됐다.

2013년 재형저축도 비과세 혜택을 내세워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가입 대상이 연봉 5000만 원 이하로 제한되고 의무가입기간이 7년으로 길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여기에 은행들은 3년간 고정금리 기간이 지나자 4%대 금리를 일제히 2%대로 끌어내렸다. 이에 가입이 종료된 2015년 말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은행에서 가입계좌 수는 106만 계좌에서 지난해 말 98만 계좌로 줄었다.

소장펀드도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데도 불확실한 환경에서 5년간 유지해야 하고, 조기 해지하면 납입액의 6.6%를 토해내야 하는 조건 때문에 시장에서 오래 환영받지 못했다. 현재까지 누적 수익률도 8.04%로 연 2∼3% 수준이며 소득공제 한도도 240만 원에 그쳤다.

ISA가 기존 관제상품의 전철을 밟지 않고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파격적으로 혜택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헌 서울대 객원교수는 “ISA가 중장년층의 노후대책이 될 수 있도록 가입대상과 세제 혜택을 대폭 확대하고, 가입기간별로 세제 혜택을 달리하는 등 장기상품으로 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유현 yhkang@donga.com·이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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