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화상 찍는 스튜디오를 아시나요?
#.2
서울 종로구 계동의 ‘물나무 사진관’
이 곳의 목요일은 특별합니다.
이날은 김현식 대표(47·사진사)가
손님들에게 카메라를 맡깁니다.
“손님이 직접 자신의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으로 자화상을 그리는 것이죠.”
그는 2015년부터
고객이 자신의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담는
‘자화상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4
사진사는 카메라를 남에게 쉽게 내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카메라를 선뜻 고객에게 내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5
“사진을 찍을수록 사진의 본질에 대해 고민이 들었습니다.
고민 끝에 지금을 있는 그대로 찍은 뒤 인화해
찍은 사람과 함께 나이 먹어가도록 만든 ‘물질’이 사진이라는 결론을 내렸죠.”
#.6
색이 바래지 않는 디지털 사진엔
시간의 켜가 쌓이지 않습니다.
김 대표는 사진에 담긴 ‘현재’를 떠올리기 위해선
‘시간의 손때’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그가 수작업으로 인화하는
흑백 은염사진(감광재료로 은을 사용한 사진)만을 찍는 이유이고
자화상프로그램 시작한 계기였습니다.
#.8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진짜 모습을 사진으로 갖고 있지 않아요.
사진 찍어주는 사람 앞에서 억지로 웃거나 포즈를 취하며 부자연스러워집니다.
게다가 찍은 사진은 예쁘게 만들기 위해 보정하죠.
당장은 세련되고 예뻐 보일 수 있지만
10년 뒤 그 사진을 보며 당시의 진짜 내 모습을 떠올리긴 쉽지 않죠.
정제되지 않은 인물 사진을 찍고 싶었습니다.”
#.9
그는 우선 사진사인 자신부터 스튜디오에서 빠지기로 했습니다.
그는 고객에게 누구의 아들과 딸
어떤 직업인이 아닌 스스로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모든 관계를 벗어던진 나 자신을 알고 있는지 질문한 뒤
카메라를 세팅하고 사진사는 스튜디오를 떠나죠.
#.10
이후의 시간은 고객의 몫입니다.
스튜디오에 놓인 거울을 보며 10분이든 15분이든
혼자 사진사의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려야 하죠.
스튜디오의 앰프로 본인이 원하는 음악을 들어도 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확신이 생기면
스스로 원격 셔터를 눌러
자신의 사진을 찍습니다.
2년간 약 80명이 카메라 앞에 서서 홀로 셔터를 눌렀습니다.
#.12
김 대표는 서울예술대에서 사진을 전공한 뒤
패션지와 여성지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며
사진만 30년 가까이 찍었습니다.
#.13
자화상 프로젝트는
그의 30년간의 고민이 만들어낸
또 다른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14
“사진은 기록입니다.
겉모습뿐 아니라 사진을 찍었던 환경, 분위기, 기억이 모두 담기죠.
이 스튜디오에서 찍은 자화상엔 진짜 나에 대해 홀로 고민한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꼭 사진관이 아니더라도 한 번 도전해 보세요.
조금 안 예쁘게 나와도 괜찮아요.
몇 년 뒤 진짜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은 이 한 장뿐일 테니까요.”
-김현식 대표
원본: 송충현 기자
기획·제작: 김재형 기자·이고은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