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프로젝트’ 진행 김현식씨
손님에게 흑백 필름 사진기로 직접 셔터를 눌러 자화상을 찍도록 하는 김현식 물나무 사진관 대표. 그는 “자신에 대해 홀로 고민한 뒤 스스로 셔터를 누를 때 그 사진은 더욱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사진사가 아니라면 사진관에서 누가 사진을 찍는다는 말일까. “손님이 직접 자신의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으로 자화상을 그립니다.” 사진 찍지 않는다는 사진사의 이름은 김현식(47).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물나무 사진관의 대표다.
그는 2015년부터 고객이 자신의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담는 ‘자화상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2년간 약 80명이 카메라 앞에 서서 홀로 셔터를 눌렀다. 사진사는 카메라를 남에게 쉽게 내주지 않는다. 그가 선뜻 카메라를 고객에게 내준 이유가 궁금했다. 김 대표는 2011년 양은냄비 공장 터였던 낡은 건물에 사진관을 차렸다. 흑백 인물사진만 찍는 사진관이다. 고객이 오면 아무런 장식도 없는 벽에 세워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는 보정 없이 인화해 줬다. 사진의 원형을 찾겠다는 고집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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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로 변환돼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은 5년, 10년이 지나도 색이 바래지 않는다. 물질이 아니니 시간의 켜가 쌓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난 뒤 사진에 담긴 ‘현재’를 떠올리기 위해 그는 시간의 손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수작업으로 인화하는 흑백 은염사진(감광재료로 은을 사용한 사진)만을 찍는 이유다. 자화상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사진의 고유성을 살리려는 고민의 결과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진짜 모습을 사진으로 갖고 있지 않아요. 사진 찍어주는 사람 앞에서 억지로 웃거나 포즈를 취하며 부자연스러워집니다. 게다가 찍은 사진은 예쁘게 만들기 위해 보정하죠. 당장은 세련되고 예뻐 보일 수 있지만 10년 뒤 그 사진을 보며 당시의 진짜 내 모습을 떠올리긴 쉽지 않죠. 정제되지 않은 인물 사진을 찍고 싶었습니다.”
우선 사진사인 자신부터 스튜디오에서 빠지기로 했다. 그는 고객에게 누구의 아들과 딸, 어떤 직업인이 아닌 스스로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모든 관계를 벗어던진 나 자신을 알고 있는지 질문한 뒤 카메라를 세팅하고 스튜디오를 떠난다.
이후의 시간은 고객의 몫이다. 스튜디오에 놓인 거울을 보며 10분이든 15분이든 혼자 사진사의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려야 한다. 스튜디오의 앰프로 본인이 원하는 음악을 들어도 된다. 내가 누구인지 확신이 생기면 스스로 원격 셔터를 눌러 자신의 사진을 찍는다.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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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록입니다. 겉모습뿐 아니라 사진을 찍었던 환경, 분위기, 기억이 모두 담기죠. 이 스튜디오에서 찍은 자화상엔 진짜 나에 대해 홀로 고민한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꼭 사진관이 아니더라도 한 번 도전해 보세요. 조금 안 예쁘게 나와도 괜찮아요. 몇 년 뒤 진짜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은 이 한 장뿐일 테니까요.”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