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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건혁]‘신 스틸러’의 조건

입력 | 2017-01-10 03:00:00


이건혁 경제부 기자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종목은 삼성전자다. 9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 주가는 장중 사상 최고가인 187만5000원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초 110만 원대까지 추락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한 외국계 증권사는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250만 원으로 책정하며 추가 상승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지난해 갤럭시 노트7 단종, ‘최순실 국정 농단’ 연루 등의 악재가 연달아 터진 상황에서 거둔 성과여서 놀랍다는 게 증권가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일각에선 평가절하의 소리도 여전하다. 한 펀드매니저는 “솔직히 반도체 공급사에 불과하다. 일본 중국 대만 등 반도체 시장 경쟁자들이 언제든 역전할 수 있지 않느냐”고까지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주가의 반전은 예고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머신러닝,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및 서비스가 빠르게 발전하고 확산되면서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반도체는 일반인들이 손으로 만지고 사용하는 소비재는 아니다. 삼성전자는 또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준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알파고나 전기차 시장을 이끄는 미국 테슬라처럼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해 나가는 주인공으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이들 기업 못잖은 인기를 누린다. 비결은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며 진행 중인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에 올라탈 수 있는 능력이다. 즉 주연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뛰어난 연기력을 앞세워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신 스틸러(Scene stealer·주연 못지않은 조연 연기자)’로서의 자질을 갖춘 것이다.

 테슬라, 구글 등과 같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이자 주연급 기업들이 걸어가는 길은 세상의 주목을 받는 화려한 꽃길이지만 리스크가 가득 찬 가시밭길이기도 하다. 이들은 기술 개발과 마케팅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해야만 살아남는다. 제도 변화에 대한 저항 등과 같은 위험도 뚫고 나가야 한다. 어렵게 신기술 개발에 성공해도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을 제치고 국제 표준으로 관철시킬 만한 영향력을 갖추지 못하면 실패할 위험도 크다.

 반면 4차 산업혁명의 조연 기업들은 짊어져야 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작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반도체에서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경쟁사와의 격차를 2년 이상으로 벌렸다. 세계시장 점유율도 꾸준히 높여 나가고 있다. 마치 신 스틸러가 외모보다는 연기력으로 승부수를 띄워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앞으로 국내에 신 스틸러가 더 많이 나오길 고대한다. 국내 시장의 규모와 경쟁력을 생각하면 소재분야, 뿌리산업에서 제2, 제3의 삼성전자가 나와야 한다. 세계시장에서 통할 기술이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증명하고 있다.

이건혁 경제부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