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부산의 일본 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에 대해 일본 정부가 어제 철거를 요구하며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 중단을 통보했다. 일본은 5일 미국에서 열린 한일 외교차관회담에서 소녀상 철거를 주장했으나 만족할 만한 답을 듣지 못하자 주한 일본대사 및 부산 총영사 일시 귀국, 한일 고위급 경제협의 연기 등 한국 경제와 외교에 충격을 줄 만한 내용을 한꺼번에 발표했다. 당장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 중단으로 한국은 비상시 일본과 통화를 교환해 외환위기를 막을 수 있는 방어벽 하나를 잃게 됐다.
소녀상 설치 후 일주일가량 무반응이던 일본이 전격 보복 조치를 쏟아낸 것은 외교적 결례다. 그럼에도 외교부는 “정부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일관계를 지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논평뿐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30분간 통화한 뒤 보복 조치를 발표한 것은 미일 간 인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과 지역 패권을 주장하는 중국과 맞서는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을 위해 한일 화해를 촉구해왔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합의를 지지하며 착실하게 이행될 것을 기대한다”고 한 바이든 부통령의 발언은 한일 갈등이 계속될 경우 한미동맹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나 마찬가지다.
일본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몰아치는 파도는 샌드위치 신세인 한국에 버거울 정도다. 미국은 한국의 정치 불안을 이유로 주한 미국대사 내정을 미루고 있을 뿐 아니라 멕시코에 생산기지를 둔 한국 기업의 부담을 배가할 수 있는 국경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대하며 한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중국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 한국행 전세기 운항 불허 등 강경 조치를 내놓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배제되는 것은 강대국들이 한국을 제대로 된 협상 상대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외교부 당국자는 “소녀상 문제와 관련해 어려움을 예단하기보다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는 한가한 소리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