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타워 지하에 문 연 서분도 대표 95년 역사-문화적 의미 이어받아 책과 사람이 만나는 명소로 부활 선대 회장측서도 응원 메시지
서분도 대표는 “일본처럼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지하철역 인기 서점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 시대를 기억하는 이라면 누구나 2002년 종로서적이 부도를 내고 문을 닫을 때 큰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1907년 ‘예수교서회’란 이름으로 문을 연 이래 95년간 출판계 정신적 지주로 자리해 온 종로서적. 이 종로서적이 이달 23일 종로구 종로타워 지하에 새로 문을 열었다. 14년 만의 부활이다.
“기존 종로서적과 규모나 비중 면에서 같진 않겠지만, 그곳이 지녔던 역사·문화적 의미를 구현하는 데 의미를 두고 싶어요.” 서분도 대표(53)는 “이곳이 신(新)종로서적이지 왜 종로서적이냐”는 기자의 첫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현 대형서점들과 장서량을 비교할 순 없겠죠. 하지만 많은 책보다 많은 (책과 사람의) 만남을 제공하는 장소가 되고 싶어요. 옛날 종로서적이 그랬듯이.” 선대(先代) 회장가에도 그러한 취지를 설명했고 “감사하고 잘 운영해 주시라”는 응원 메시지를 받았다.
광고 로드중
“주변 걱정요? 그거 두려웠으면 나오지도 않았어요.”
서 대표는 어딘가 급히 가더니 기사가 가득 담긴 투명 파일을 들고 왔다.
“올 7월 김언호 한길사 대표 등 출판계 원로들이 드디어 ‘종로서적 재창건을 위한 발기인 모임’을 발족했단 소식을 들었어요. 이후 나오는 기사를 스크랩한 거예요.”
곳곳에 형광펜으로 줄을 그으며 읽은 흔적이 가득했다.
광고 로드중
서 대표의 부친인 고(故) 서인환 씨는 한국고전번역연구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의 초대 간부였다. 서 대표가 아무도 쉬이 손댈 수 없었던 부활 사업에 뛰어든 데엔 아버지를 이은 ‘출판인 2세’란 사명감도 있었다.
하지만 사명감과 자부심만으론 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이때 곳곳에서 도움이 답지했다. 종로구가 종로서적 복원에 모든 행정적 지원을 제공한다고 밝혔고, 종로타워 건물주와 출판문화재단 등도 서점을 과거 만남의 메카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시설 협조를 검토 중이다. 직원 공고엔 열정을 가진 지원자들이 줄을 섰다. 대형서점에 근무하던 부부, 방송작가에 시인까지. “그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서 대표는 앞으로 종로서적이 크진 않지만 특색 있는 책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 “대형서점의 출발이 된 종로서적이 뒤이은 대형서점으로 인해 폐업한 건 역설적이죠. 영세 서점들이 위기를 겪는 지금, 이번엔 종로서적이 영세 서점들의 희망이 되는 역설을 구현하고 싶습니다.” 1408m²(약 426평), 옛 종로 골목처럼 구불구불 뻗은 서가를 지나며 서 대표의 눈이 빛났다.
이미지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