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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펜스의 한국 블로그]상상을 뛰어넘는 민주주의의 현실

입력 | 2016-12-06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그레고리 림펜스 벨기에 출신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

 책 출판 업무는 여러모로 재미있다. 문학을 대하는 재미도 그중 하나다. 출판시장 뉴스나 문학 블로그를 규칙적으로 보는 것도 흥미롭다. 새로운 트렌드나 분석할 통계가 많아 책을 주제로 사람들과 끝없이 대화할 수도 있다.

 출판업계 관계자들은 약간 괴짜다. 문학을 통해서 세상을 관찰하고 현실을 통해 문학을 본다. 현재를 예견한 옛날 소설을 찾아내는 것도 뿌듯한 일이다. 예를 들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사건이 있으면 그 일을 예측했던 책을 찾아 그 작품이 얼마나 예언적이었는지 해석하는 식이다. 오래전에 출간된 도서일수록 더 그렇다. E B 화이트의 1948년 작품 ‘이것이 뉴욕이다(This Is New York)’에는 도시를 파괴하는 비행기가 나온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이 책이 갑자기 주목받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요즘 미국의 정치 상황 때문에 부활하고 있는 고전이 하나 있다. 싱클레어 루이스(1885∼1951)의 ‘여기서는 그런 일이 벌어질 수가 없다(It Can’t Happen Here)’. 작가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미국인이다. 노벨 문학상을 1930년에 받았고 이 소설은 1935년에 출간됐다.

 ‘버즈’란 별명으로 알려진 미국 상원의원 버젤리우스 윈드립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이 주인공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대통령이 된다면 급격한 경제 개혁을 하고 애국심과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로 돌아가겠다”라는 엄청난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에 선출된다. 희한하게도 낯이 익은 이야기다.

 버즈 윈드립 후보는 무서울 정도로 도널드 트럼프와 비슷하다. 둘 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 주겠다”라는 약속을 하고 소수 집단과 이민자를 비난했다. 트럼프의 대선 공약을 보면 루이스를 예언자로 보게 된다. 윈드립처럼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돼 소설이 다시 잘 팔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2016년 11월 28일자 ‘뉴요커’지에서 데이비드 렘닉이라는 기자가 ‘여기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It Happened Here)’란 제목으로 기사를 썼다. 참고로 루이스의 소설에서 윈드립 대통령은 완전한 독재자가 된다. 미국이 포퓰리즘을 통해 전체주의 국가가 된다는 이야기다. 교훈은 민주주의가 생각보다 부서지기 쉽다는 점이다. 아무도 모르는 것은 트럼프의 의도다.

 트럼프는 생각과 행위를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다. 아무도 모른다. 아마 본인도 모를 것이다. 트럼프가 하는 말을 들을수록 그의 머릿속에 뭐가 있는지 불투명하다. 아기 같기도 하다. 최근에 트럼프는 아주 실용적인 결정을 하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보인다는 얘기가 나와 “그나마 다행”이란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의 재임 기간을 낙관적으로 기대할 이유는 아닌 것 같다.

 필자가 보기에 제일 무서운 게 두 가지다. 트럼프 수행단에 과학 전문가가 많지 않아 환경 보호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우선 두렵다. 또 이민자와 소수 인종이 사회적 희생양이 될 위험이 높다. 미국 내 소수 집단의 기본권 보호는 어떻게 될 것인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트럼프가 나쁜 지도자로 밝혀지면 미국 시민들은 어떻게 저항할까. 어떻게 시위할까. 요즘에 한국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하는 것처럼 미국 주민들도 결연히, 비폭력적으로 자기 불만을 표현할 줄 알까. 그곳에서는 이런 시위가 벌어질 수 있을까. 지금 세계의 문제아가 돼 버린 미국이 무척 걱정스럽다. 한국인들은 ‘병든 민주주의’에 힘과 희망을 주고 있다. 한국에서 살다 보면 “상상을 뛰어넘는 현실도 때론 대단한 풍자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레고리 림펜스 벨기에 출신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