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 정책사회부장
대통령의 뒤에서 국정을 농락한 최순실은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다. 그 주변에 빌붙어 나라를 우스운 꼴로 만든 떨거지들도 일벌백계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사실인 것처럼 알려주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했으며 왜 물러나는 게 옳은지를 정확하게 가르쳐야 진짜 교훈이 된다.
작금의 국정 역사 교과서 논란이 안타까운 것도 그런 맥락과 비슷하다. 청소년에게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는 단순히 사실과 거짓을, 잘잘못을 전해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훨씬 중요한 문제다. ‘역사는 사실을 보는 해석의 문제’라는 시각을 가진 역사 교사가 많기 때문에 더 그렇다.
국정 교과서와 검정 교과서를 혼용해 학교 현장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부는 2015년 개정교육과정을 기반으로 만든 국정과 2009년 개정교육과정으로 만든 검정을 내년에 함께 쓸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일단 2017학년도 한 해는 고등학교에서 국정 교과서만 쓰게 하는 거다. 국정화는 단 1년만 한다. 어차피 중학교는 서울을 비롯해 많은 지역이 내년에 역사를 편성하지 않을 테니 별문제도 없다. 동시에 내년 1년 동안 2015년 교육과정에 기반을 둔 검정 교과서를 빨리 만들자. 일부만 고치고 다듬는다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이유가 없다. 그러면 1년 후 지금보다 훨씬 나은 검정 교과서가 나올 게 틀림없다. 검정 교과서 저자들도 당연히 더 좋은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나. 그리고 2018학년도부터는 2015년 교육과정으로 만든 국정과 검정을 혼용하면서 교육 현장에서 택하도록 하면 된다.
물론 중요한 전제가 있다. 좌우의 이념단체들이 학교의 교과서 선정 과정에 간여하면 안 된다. 떳떳하다면 정당하게 교과서 내용으로 평가받으면 된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거나 도태된다면 국정과 검정의 저자들 모두 승복할 수 있다. 공존하면 또 어떤가. 두 교과서가 더 좋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의 장점을 닮아가며 질 좋은 교과서의 개발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현장 검토본을 본 서울 지역 교사들 가운데 “생각처럼 나쁘지 않다”는 의견이 있음에도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말을 못 하는 교사들이 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아무리 유익한 책이라도 절반은 독자가 만드는 것이다.’
이종훈 정책사회부장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