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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왜 만난 거냐”…美-러 ‘외교 뒤통수’ 맞은 아베 총리

입력 | 2016-11-23 18:49:00


잘 나가는 듯 보였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정상외교 행보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많은 공을 들여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잇달아 아베 총리에게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자 17일 뉴욕에서 해외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트럼프와 90분 동안 만났다. 아베 총리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고 회담이 끝난 뒤 "트럼프는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트럼프는 나흘 뒤인 21일 영상 메시지를 통해 "취임 후 TPP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1위 경제대국 미국이 이탈하면 TPP는 좌초하게 되고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에도 차질이 빚어진다. 발 빠른 정상외교에 점수를 줬던 일본 야당들은 "트럼프는 왜 만난 거냐"며 비아냥거렸다. 제1야당인 민진당의 오오구시 히로시(大串博志) 정조회장은 22일 "아베 총리의 외교상의 실책"이라며 "이렇게 된 상황에 대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비판했다.

20일 페루 리마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장에서 가진 러일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겐 복병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베 총리는 다음 달 예정된 푸틴 대통령의 방일 때 대대적인 경제협력을 약속해 러시아와 영유권 분쟁 중인 쿠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 반환 협상에 속도를 낼 참이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이날 돌연 러시아가 실효지배하는 쿠릴 4개섬에서 양국간 '공동경제활동'을 하는 방안을 들고 나왔다. 하루 뒤에는 "쿠릴 4개섬은 러시아 주권이 있는 영토"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협상 가능성을 시사해 왔던 태도에서 180도 태도를 바꾼 것이다.

아베 총리는 회담 후 기자들에게 섬 반환 문제에 대해 "종전 후 70년이 되도록 해결하지 못한 만큼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고 말해 협상이 순조롭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태도 선회 이유로 트럼프 당선을 꼽았다. 트럼프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뜻을 밝히면서 푸틴 대통령으로선 굳이 일본과 협상하지 않더라도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