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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거국내각’ 말 바꾼 野, 국정 공백사태 즐기겠다는 건가

입력 | 2016-11-01 00:00:00


 대한민국 국정을 농단한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어제 검찰에 소환됐다. 어제 정국 수습을 위해 열린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 모임은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의 반발로 5분 만에 결렬됐다. 그는 야권이 제안한 거국내각 구성을 여당이 수용했음에도 야당이 도리어 거부한 것을 비난하며 “하야 정국, 탄핵 정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냐”면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비공개 회의로 합의하고도 여야 갈등을 일부러 공개한 저의가 의심스럽다. 회의를 결렬시킨 정 원내대표도 무책임하지만 거국내각 제안을 뒤집은 야당의 책임은 더 크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한 지난달 25일 이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손학규 전 대표를 비롯한 야당 원로들은 이구동성으로 거국내각 구성을 촉구했다. 그러나 거국내각을 구성하면 야당도 대통령을 돕겠다던 문 전 대표는 어제 “짝퉁 거국내각으로 위기를 모면할 심산이냐”며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는 수순이 해법”이라고 말을 바꿨다. 어떻게든 ‘최순실 정국’을 장기화해 내년 대선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어제 거국내각 구성에 대해 별도의 특별법에 의한 특검 도입과 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새로운 전제 조건으로 주렁주렁 들고나왔다. 그는 새누리당이 특검 논의를 수용했을 때도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사퇴 등을 선결 조건으로 내건 바 있다. 그제 거국내각을 거부하면서 “오물 같은 데다가 다시 집을 짓겠다는 말인가”라고 했고, 어제는 “박 대통령이 국권과 국헌을 사교(邪敎)에 봉헌했다”며 청와대는 ‘국권을 파괴시킨 아지트의 범죄자 집단’, 검찰은 “사이비 교주에게 요설의 자유를 줬다”라고 막말까지 퍼붓는 등 리더답지 못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국가적 신뢰와 국정 시스템이 붕괴된 상태다. 대통령을 믿을 수 없다면 국회라도 신뢰하고 싶은 것이 국민 심정이다. 미국도 워터게이트 사건이나 빌 클린턴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국정 공백의 위기가 있었지만 의회가 중심을 잡고 국정을 함께 끌어가는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위기를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기대를 모았던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은 초장부터 불발됐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정국 수습책을 논의한다며 어제 여야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지낸 4선 이상 중진의원들을 서울 여의도의 최고급 일식당으로 초대해 만찬을 했다. 민심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 국회마저 이러니 도무지 국민이 기댈 곳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