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인의 미식견문록
숲에서 채집한 핀란드의 야생 버섯.
지난해 핀란드에서 최고의 베드 앤 브렉퍼스트로 선정된 ‘로마모킬라’의 저녁식탁. 바앤다이닝 제공
광고 로드중
핀란드 헬싱키의 노카 레스토랑.
야생 베리로 만든 웰컴 음료.
핀란드에서는 누구나 숲에서 야생 베리와 버섯을 채집할 수 있다.
핀란드의 자연을 맛보게 될 다음 장소가 몹시 궁금해졌다.
광고 로드중
인근 농장에서 키우거나 지역 내 자연에서 채집, 어획한 식재료만 사용하는 ‘비스트로 빌레’의 요리.
시간이 쉬었다 가는 곳
‘테르티 마노르’도 미켈리의 자연을 제대로 맛보고 즐길 수 있는 곳이다. 16세기 영주의 저택과 농장이 결합된 형태의 장원(莊園·Manor)을 개조한 이곳은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별실 같은 호텔 시설과 오가닉 삼림, 정원, 산책길, 카페, 숍, 농장 등이 복합적으로 구성돼 있다.
주인장 부부는 증조부가 이곳을 구입하면서 현재 3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실내에는 예전부터 내려온 러시아풍 가구들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돋운다. 요리에 사용하는 식재료는 모두 자급자족하는데, 농장에 없는 것들은 인근 숲에서 채집한다. 주로 야생 베리와 버섯을 따는데 이 지역은 오가닉 삼림으로 등록된 곳이다.
워낙 위도가 높고 청정 지역이라 웬만하면 오가닉일 것 같다. 그래도 해충은 없는지,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주인은 “추위 때문에 해충이 살아남지 못해요. 발생해도 확산되지 않고 저절로 없어지죠. 토지도 6.5pH로 약산성이어서 해충이 번식하기 어렵습니다”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정원에는 투숙한 손님뿐만 아니라 이웃들도 찾아와 점심 식사나 커피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카페가 있었다. 점심은 뷔페로 마련되는데 이날은 청어의 비린 맛이 없도록 블랙커런트로 절인 청어, 정원에서 따온 베리를 넣은 그린 샐러드, 직접 구운 빵, 주니퍼 베리 젤리, 125년 된 사워 도로 만든 크리스피 브레드, 버섯 향이 진한 포르치니 수프, 베리 스무디 등 지역의 농산물과 핀란드의 전통이 담긴 레시피로 완성된 요리가 푸짐하게 차려졌다.
광고 로드중
미켈리에서 북쪽으로 다시 100km 정도 차로 이동해 핀란드에서도 오페라 축제로 유명한 사본린나(Savonlinna)에 도착했다. 사본린나는 핀란드어로 ‘사보의 요새’, 스웨덴어로는 ‘새로운 요새’를 의미한다. 중세 스웨덴의 섭정 시절 요새를 건설했는데 매년 7월이면 바위섬 위에 지은 요새의 정원에서 환상적인 오페라가 펼쳐진다. 울창한 숲과 호수로 둘러싸인 고성에서 인위적인 무대 장치나 음향 시설 없이 자연스럽게 울려 퍼지는 오페라의 감동은 이곳을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의 도시로 만들었다.
자작나무 숲을 한참을 달려 우리가 향한 곳은 로마모킬라(Lomamokkila)라고 하는 베드 앤 브렉퍼스트(Bed&Breakfast)다. 조식과 석식을 제공하는 로마모킬라는 지난해 세계적인 여행 사이트 트립 어드바이저 사용자들이 핀란드의 ‘베스트 베드 앤드 브렉퍼스트’로 뽑은 적이 있다. 1주일 투숙 비용은 약 700∼800유로다.
우리로 치면 시골 민박집인데, 자연스러움을 넘어 ‘평화로운 시공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작나무 숲과 숲 사이에 터를 잡은 안락한 코티지들, 광활한 목초 위에 행복해 보이는 하일랜드 캐슬 소떼, 걸어서 10여 분이면 자작나무 숲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호수, 지금 따 먹으면 좋을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사과나무. 그림 같은 정적을 깨고 쏜살같이 달려온 강아지가 한 명 한 명에게 냄새 도장을 찍는다. 마침 오후 3시경. 홈 브루어링한 맥주를 마신 뒤 숲으로 베리 채집을 나섰다.
주인장이 안내를 맡았다. 아빠를 따라 나온 두 딸 엘라(3), 안나(5)는 익숙한 일인 듯 긴소매 옷에 장화로 무장하고 손에는 소쿠리를 들고 있다. 수확시기가 끝물인 빌베리나 간간이 보이는 링곤베리, 이름 모를 버섯이 나타날 때마다 “아빠, 이건 먹어도 돼요?”하고 물으면 아빠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으면 안 되는지 반복적으로 일러준다. 엘라와 안나에게 전하는 지혜는 언젠가 그들의 아이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핀란드는 아이슬란드와 함께 위도 60도 이북의 북극권에 수도와 기간산업이 존재하는 단 2개국 중 하나다. 그만큼 추운 지역이지만 핀란드는 농업 생산국에 해당한다. 여름철 풍부한 일조량에 힘입어 짧은 기간 안에 급속한 성장기를 거치면서 베리 등 야생 농작물은 생리 활성 물질이 풍부하다.
또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청정한 물과 공기, 오가닉 토양이 풍부한 나라로 호수의 숫자만 약 20만 개에 달하며 국토의 73%가 숲으로 구성돼 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핀란드 삼림의 40%가 오가닉 인증을 받았는데, 이는 전 세계 오가닉 삼림의 30%에 해당한다.
숙소로 돌아와 보니 메인 코티지의 다이닝룸에는 칼레의 아내가 직접 차린 저녁 식탁이 풍성했다. 농장에서 키운 소로 만든 핀란드식 스튜는 마치 갈비찜마냥 큼지막한 고기들이 고소하고 진한 국물에 담겨 있었다. 여기에 핀란드 국민 생선이라 할 수 있는 무이쿠(Muikku·흰송어) 구이, 곁들이기 좋은 오이 피클, 토마토 샐러드, 야채 수프, 직접 재배한 감자와 당근 요리, 직접 구운 호밀빵, 여기에 숲에서 딴 야생 베리로 만든 음료, 인근 농장 유제품으로 만든 디저트 애플크럼블까지 모두 직접 재배하거나 인근 호수, 농장에서 수급한 재료들의 조합이다. 그래서일까, 가짓수가 적지 않은 세미 뷔페인데도 하나하나 자꾸 맛을 탐하고 싶었다. 100% 로컬이라는 이상이 현실이 된 식탁, 이것을 당연한 듯이 즐기는 핀란드인의 식탁이 갈수록 매력적이었다.
박홍인 바앤다이닝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