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이재명 기자
다수결로 한다면 ①번이 정답 같다. 아직 출마 여부도 확실치 않은 반 총장은 꾸준히 여론조사 지지율 1위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말처럼 “구름 위 신선 세계에 계신 그분”으로 인해 여권 대선 후보들은 죽을 맛이다. 뭔가 화두를 던지고, 사람을 모으려 해도 한마디면 머쓱해진다. “근데 반 총장은 출마 안 한대요?”
②, ③번은 아리송하다. 김 전 대표는 분명 ‘독자 출마’에 뜻이 있어 보인다. 제3지대론의 원작자기도 하다. 지금은 모두 제3지대론에 시큰둥하지만 한국 정치에서 일주일 뒤 일을 누가 알겠는가. 홍 지사를 보기에 넣은 건 그가 ‘한국의 트럼프’를 꿈꿔서만은 아니다. 여권 고위 인사의 흥미로운 분석 때문이다. “여권 후보는 홍준표의, 야권 후보는 김종인의 독설에 한 명씩 나가떨어질 거다.”
광고 로드중
내년 대선은 우리가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구도 속에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여야 후보와 현직 대통령이라는 3각 구도다. 물론 현직 대통령은 대선 주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대선 구도를 흔드는 키플레이어가 될 공산이 크다. 아니 이미 그렇게 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 그 매개는 광란의 핵 질주에 나선 북한이다.
최근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오로지 북한이다. 4대 구조 개혁도, 경제 혁신 3개년 계획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냥 북한이 아니다. “정신 상태가 통제 불능”인 김정은과 “주민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북한 정권의 붕괴를 겨냥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 주민에겐 빨리 자유의 품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얼마 전 새누리당의 한 인사는 이렇게 귀띔했다. “미국이 올해 상반기 청와대에 ‘북한의 모든 공격 시설을 3일 안에 타격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결심만 남았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보탰다. “누구는 ‘확전 자제’를 말하겠지만, 박 대통령이라면 실행에 옮길 수 있다. 그러니 얼른 생수와 라디오를 사 놓아라.”
여기까진 ‘여의도 괴담’으로 여겼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메시지는 안보 불감증에 ‘아이스버킷(얼음물 샤워)’을 해 줬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차관보는 “김정은이 향상된 핵 능력을 갖게 되면 바로 죽는다”고 했다. 외교관의 가장 비외교적인 발언이다. 다음 달 8일 미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한 힐러리 클린턴은 2013년 6월 “북한이 소형 핵탄두를 실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게 되면 미국이 북한을 막겠다”고 공언했다. 북한의 핵무기 실전 배치는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 이미 미국은 북한 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어 있다. 북한 타격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광고 로드중
물론 북핵 문제에는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그렇다고 ‘말이 통하지 않는’ 야당을 핑계로 국내 문제를 팽개치는 듯한 모습은 또 하나의 공포다. 어떻게든 야권을 설득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붕괴를 막는 건 북핵만큼이나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시급한 사안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마땅한 카드가 없다고 손을 놓는다면 북핵 리스크도 커진다. 박 대통령이 야권의 무자비한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을 수용하는 대신 노동 개혁 법안 통과를 간곡히 요청했다면 어땠을까. 이제 박 대통령에게 ‘타협의 예술’을 기대하는 건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길 바라는 것만큼이나 몽상이 돼 버린 것인가.
예술의 반대말은 추함이 아니라 무감각이라고 했다. 정치의 반대말은 대치가 아니라 방향 상실이다. 대한민국 내비게이션은 지금 어떤 길을 안내하고 있는가. 내년 대선의 최대 변수는 분명 반 총장이 아닌 한국 정치와 한반도의 불확실성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의 선택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