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잃은 산업 구조조정] 해운 방치… 조선은 과잉개입… 길잡이 제역할 못하는 정부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우조선해양 사옥 로비. 대우조선해양은 구조조정에 정부가 개입해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8일 ‘제3차 산업 구조조정 분과회의’에서 “공급 과잉으로 진단된 분야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을 통해 과잉 설비를 해소하도록 유도하고 미래 고부가가치 분야에 대해선 연구개발(R&D), 인력 양성, 금융·세제 지원 등 3대 핵심 정책수단을 통해 집중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가 국가 경쟁력 제고의 핵심 과제인 산업 구조조정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산업 회생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다 뭇매를 맞은 정부가 아예 ‘관치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구조조정의 책임을 민간에만 맡기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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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개입이 부담스러운 정부
정부는 6월 초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만든 뒤 산업 구조조정 컨트롤타워로 삼았다. 하지만 한국철강협회와 한국석유화학협회가 각각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베인앤드컴퍼니에 용역을 맡긴 컨설팅 보고서가 마무리되기를 기다려 왔다. 존폐의 위기에 놓인 조선은 물론이고 철강, 석유화학 등 공급 과잉 업종들도 ‘구조조정은 민간 자율에 맡긴다’는 기조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이관섭 산업부 1차관이 19일 “정부가 나서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이 될 수 있다”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하지만 컨설팅 보고서는 개별 산업의 공급 과잉 제품 현황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설비 조정을 제안하는 데 그쳤다. 정부는 이를 수용하겠다는 태도다. 산업 전체를 바라보고 국가 경쟁력을 제고해야 할 정부가 구조조정의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외면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한 대목이다.
정부도 구조조정에 직접 개입하는 데 대한 부담을 떨치긴 힘들다. 시장경제주의의 근본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특정 기업 지원’으로 비쳐 통상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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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날 발표한 내용을 포함해 3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철강·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여기에 각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중장기적 정책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정갑영 연세대 명예 특임교수(경제학)는 “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미국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의 경우 전문가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면서 TF 결정에는 면책의 권한을 주기도 했다”며 “국내에서도 이러한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정부 역할론’이 대두되는 배경
정부가 모종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에는 민간 부문에서 자율적 구조조정의 토양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리 잡고 있다. 당장 실적에 급급한 민간 기업들은 구조조정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고 있다.
현대중공업 최길선 회장과 권오갑 사장은 3월 공동 담화문을 통해 “최근 10여 년간 우리 회사는 너무 비대해졌고 세상의 변화에 둔감했다”며 “우리를 간섭하는 사람도 없었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직언하는 사람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조선업계가 선제적 구조조정의 기회를 놓쳤다는 점을 직접 고백한 것이다. 실제로 화학부문 계열사들을 한화와 롯데에 모두 넘긴 삼성그룹 정도만 빼면 발 빠른 구조조정이나 사업 전환에 성공한 기업들이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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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sunggyu@donga.com·김창덕 /세종=손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