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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카톡 이어 ‘인간 쪽지’까지… 민원 챙기려 예산 나눠먹기

입력 | 2016-09-19 03:00:00

[프리미엄 리포트/예산 400조 ‘깜깜이 편성’]만신창이 예산안 뒤엔 ‘부실 국회’




정부 예산안을 심사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 회의실 앞 복도는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각 부처 공무원들로 늘 북새통을 이룬다. 의원들이 예산안 심사라는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 지역구 예산 민원을 수시로 끼워 넣는 곳도 이곳이다. 동아일보DB

11월이면 내년 정부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일 제출된 2017년도 예산안은 상임위원회별로 예비심사를 거쳐 여야 의원 50명으로 구성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최종 조율된다. 그러나 국회 예산 심사는 매년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의원마다 무리한 지역구 예산 챙기기로 국가 예산의 균형과 우선순위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예산안 통과 뒤 어김없이 ‘만신창이 예산안’이 도마에 오르는 이유다.

○ ‘쪽지’와 ‘카톡’에 이어 ‘인간 쪽지’까지

지난해 11월 18일 19대 국회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원회에서는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여야 의원 간 설전이 오갔다.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이 “‘인간 쪽지’ ‘막가파식’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항의하자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최원식 의원은 “지역 대표성을 가지고 올라왔는데 누구를 뺀다면 그 지역을 단절시키는 것”이라고 맞받아친 것이다.

이른바 ‘인간 쪽지’ 논란이었다. 인간 쪽지는 예산소위 위원을 돌아가면서 교체 투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야당은 ‘지역 대표성’을 이유로 예산소위 위원 사·보임을 되풀이했다. 권역별 예산 민원을 수시로 반영하기 위해서다.

이날 회의에선 전날 충청권을 대표해 참석한 새정치연합 박범계 의원 대신에 영남권을 대표하는 배재정 의원을 투입했다. 예산소위 위원은 예산안에 반영된 사업을 빼거나 새로 넣을 수 있어 ‘꽃보직’으로 통한다. 이날 회의는 인간 쪽지 논란을 놓고 여야 간 공방이 이어져 4시간가량 정회를 한 뒤에야 다시 열렸다.

최근에는 민원성 예산을 적어 회의장에 밀어 넣는 ‘쪽지 예산’보다 카카오톡 등 휴대전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카톡 예산’ ‘문자 예산’이 대세라고 한다. 19대 국회에서 예결위원을 지낸 한 의원은 “막판에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100통 정도 온다”며 “회의 중에 전화를 받지 못하면 나중에 서운해한다”고 전했다.

예결위원들에게는 쪽지 예산 말고도 동료 의원들의 ‘대리 질의’ 요청도 쏟아진다. 예산소위에서 서면 질의라도 해야 자료집에 해당 지역 예산 요구가 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결위원들이 다른 의원들의 지역 현안까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대리 질의를 요청한 의원실에서 질의서를 대신 작성해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말 그대로 질의 내용도 모르고 질의를 하는 ‘대리 질의’인 것이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만큼 예결위원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다. 예결위원 출신의 한 의원은 “어떻게 알았는지 집에까지 찾아와서 예산에 대해 설명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예산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게 맞지 않아 돌려보냈지만 나도 나중에 부탁할 일이 있을지 모르니 무조건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고 전했다.

○ 막강 예산 심의권으로 압력 행사도

지난해 예산 심사를 앞둔 8월에는 ‘갑질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예결위 야당 간사인 안민석 의원은 지역구의 호남향우회 회원들과 전북 부안군으로 야유회를 갔다. 이 자리에서 안 의원은 김종규 부안군수에게 “군수께서 노래하시면 부안에 예산 100억 원을 내려주겠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안 의원은 결국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가벼운 발언이었지만 여러분의 질타를 통해 깊이 반성하고 더욱 자중하겠다”고 사과했다.

겉으로 드러난 ‘갑질 사례’ 외에도 예산 심의권이나 국회의원 직위를 활용해 드러나지 않게 압력을 행사하는 일은 부지기수다. 19대 국회 때 예결위원을 지낸 A 전 의원은 한 연구기관의 예산을 증액시켰다. 이때 A 전 의원은 해당 기관장에게 자신이 알고 지내는 연구원을 소개했다. 그 연구원에게 해당 연구 과제를 맡길 것을 요청한 것이다. 예산이 필요한 기관장과 기관 내부에 민원을 부탁해야 하는 국회의원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사례다.

B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부처 공무원에게 설명을 하던 중 그 자리에서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해당 부처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자신의 예산 민원을 듣고 있던 공무원을 앞에 두고 해당 공무원의 ‘승진 청탁’을 한 것이다. 해당 공무원이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데 사활을 걸 수밖에 없도록 만든 셈이다. C 전 의원은 SOC 예산을 증액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공무원과 멱살잡이를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결국 C 전 의원은 정부 예산안에 없던 지역구 SOC 예산을 수십억 원 챙겼다.

예산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후에는 실세 의원들이 예산을 두둑하게 챙겼다는 뒷말이 늘 따른다. 지난해 12월 예산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뒤 당시 새누리당 대표와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등 주요 당직자와 예결위원장 및 예결위 간사의 지역구 예산이 국회 심사 과정에서 1800억 원이나 증액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인문교양학부)는 “예산 심의 과정이 뒤틀리고, 왜곡돼 있고, 전문성도 없고, 국회법도 안 지키고 있는 총체적 부실”이라며 “최소한 예산 심사의 전 과정을 녹취해서 국민에게 공개를 하는 등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찬욱 song@donga.com·한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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