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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전승훈]‘꽃보다 남자’ 대만 드라마 몰락의 교훈

입력 | 2016-08-16 03:00:00


전승훈 문화부 차장

올해 초 평소 잘 아는 엔터테인먼트업계의 지인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여기저기서 수십억, 수백억 원씩 중국 자본을 투자받고 지분을 내주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는데 과연 받아도 문제없는가 하는 내용이었다.

2013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대박을 친 후 차이나 머니의 공습이 본격화됐다. SM엔터테인먼트는 알리바바로부터 355억 원, YG엔터테인먼트는 텐센트로부터 357억 원, ‘뉴(NEW)’는 중국 화처미디어로부터 535억 원, 키이스트는 소후닷컴으로부터 150억 원….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기업이 올해 상반기에 한 국내 투자 중 70%가 한류 연예산업 분야였다.

중국 자본이 한류 콘텐츠 확보에 나선 이유는 엄청난 수익률 때문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16부 누적 시청 횟수가 총 25억 뷰가 넘었다. 이 드라마는 중국의 한 동영상 사이트가 45억 원에 구입해 1000억 원 이상의 광고 수익을 올렸다. ‘별에서 온 그대’ ‘런닝맨’ ‘나는 가수다’ 등의 수익률도 비슷하다. 한류 콘텐츠의 헐값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다.

SM, YG, JYP 등 3대 기획사는 중국 시장의 매출 비율이 현재 20∼30%대인데 5년 후엔 50%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급속한 중국 의존도 심화는 한국이 ‘제2의 대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20여 년 전만 해도 대만은 ‘판관 포청천’ ‘꽃보다 남자’를 제작한 아시아의 드라마 강국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자본에 잠식되면서 대만의 제작 노하우를 갖춘 PD, 작가 등 고급 인력들이 중국으로 건너갔다. 스타들도 중국 활동에만 매달렸다. 결국 대만 콘텐츠의 질이 떨어지고 문화산업이 붕괴했다. ‘쯔위 사태’에서 보듯 현재 대만은 중국에 문화적 주권을 빼앗긴 속국으로 전락했다.

중국은 한국에서도 드라마와 예능 PD, 작가, 배우 등의 제작 인력을 끌어들여 자체 제작능력을 키우고 있다. 중국이 자동차, 휴대전화 시장에서 약진했듯이 국내 지상파 방송에서 중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 날도 머지않았다. 중국이 저작권을 쥐고 있고 한국 배우, 작가, PD들이 만든 드라마가 국내 전파를 탄다면 콘텐츠 수출입 시장은 역전되는 것이다.

요즘 SBS의 주말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의 시청률은 5∼6%대에 머물고 있다. 경쟁 프로그램인 KBS의 ‘1박2일’ 시청률(13∼14%)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된다. 그러나 중국 TV에서 리메이크한 ‘달려라 형제’가 SBS에 큰 수익을 낳고 있기 때문에 ‘런닝맨’은 폐지될 가능성이 없다. 이제는 국내 TV채널의 편성권도 중국이 쥐고 있는 셈이다.

최근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에 반발한 중국이 한류 제동 걸기에 나섰다. 그러나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중국 자본에 급속히 빨려들어가고 있는 한류 산업의 글로벌 다각화 전략을 재추진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한류 콘텐츠의 경쟁력은 미국의 팝 문화, 일본의 아이돌 문화, 유럽의 최신 음악 등 글로벌 문화를 한국 특유의 창의성 있는 스토리로 융합하면서 발전해왔다. 그러나 중국 시장에 50% 이상 의존하게 된다면 한류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매력은 떨어질 위험이 크다. 언젠가부터 중국인으로 가득 찬 제주도의 신비한 매력이 감소한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의 명품 기업은 구매력을 갖춘 중국 소비자들을 고맙게 생각하면서도, 매장에 중국인 고객만 보이는 현상을 막기 위해 고심한다. 문화는 다양성이 생명이다. 사드 보복을 위한 중국의 ‘한류 제재’가 장기적으로는 위기만이 아닌 이유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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