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 씨(44·여)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교 진학을 못했다. 부모가 이혼하자 17세 어린 나이에 고향인 충남을 떠나 혈혈단신으로 부산에 왔다. 그는 신발공장에 다니며 주경야독을 했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고교를 졸업한 뒤 전문대에 진학했고 부산의 한 중소기업에 식당 영양사로 취업했다. 월급도 차곡차곡 모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던 그의 삶은 ‘잘못된 만남’ 탓에 서서히 무너졌다. 김 씨는 1994년 7월 또 다른 동창생을 통해 고교 동창생 권모 씨(44·여)씨를 만났다. 비록 학창시절엔 모르는 사이였지만 객지 생활로 힘들어하던 김 씨에게 권 씨는 쉽게 마음을 열 수 있는 상대였다.
김 씨는 1998년 말 어머니로부터 “일본에서 같이 살자”는 연락을 받고 건너갔다. 김 씨는 일본에서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지냈다. 하지만 권 씨와의 질긴 악연은 끝나지 않았다. 권 씨는 김 씨의 사주가 좋지 않다면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주변 사람이 죽는다’며 제사 비용으로 수천만 원을 받아냈다. 김 씨는 이 같은 수법에 속아 일본에서 힘들게 번 돈을 권 씨에게 송금했다.
2009년 김 씨는 영주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때부터 권 씨는 김 씨를 더 집요하게 농락했다. “신체 중요 부위에 귀신이 있다. 남자와 성관계를 해야 살 수 있다”고 속였다. 친구를 믿었던 김 씨는 또 속고 말았다. 권 씨는 2010년 3월부터 올 6월까지 김씨에게 성매매를 시켜 벌어들인 수억 원의 수익금을 챙겼다.
이어 김 씨에게 “너의 성관계 동영상이 시중에 유포됐다. 이를 해결하려고 사채 6000만 원을 빌려 썼다”며 6년간 5억여 원을 김 씨로부터 빼앗았다. 또 권 씨는 굿이나 제사에 필요하다며 김 씨에게 치킨, 김밥, 해물탕 등을 배달하게 하기도 했다.
권 씨의 사기 행각은 김 씨에게 더 많은 돈을 가로채기 위해 사채 때문에 교도소에 수감됐다고 거짓말하면서 들통이 났다. 김 씨가 실제 교도소에 가서 확인한 결과 권 씨가 수감돼 있지 않았고 그제야 자신이 꾐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
반면 김 씨는 유흥주점에서 일하고 손님과 성관계하며 번 돈을 매일 권 씨에게 송금했고, 찜질방·고시텔을 전전하며 마치 ‘앵벌이 노예’ 같은 비참한 생활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5일 권 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권 씨는 1998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김 씨로부터 모두 2389차례에 걸쳐 8억여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부산=강성명기자 smkang@donga.com